셰익스피어의 비극 '오델로'는 숨 돌릴 틈 없이 격랑처럼 몰아치는 질투의 드라마다. 악마의 간계가 오해를 부르고 오해는 살인을 낳는다. 15세기 말 베네치아의 무어인 장군 오델로는 부하 이아고의 계략에 빠져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목졸라 죽이고 자살한다. 이 작품은 질투에 눈먼 사내의 흔해 빠진 치정 살인극이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위엄 있고 고귀한 영웅(오델로)과 천사처럼 순결하고 아름다운 여자(데스데모나), 신을 비웃으며 선을 파괴하는 냉혹한 악마(이아고)를 창조함으로써 장엄하고 숭고한 드라마를 완성했다.
셰익스피어의 '오델로'가 리투아니아 연출가 네크로슈스의 연극, 영국 로열오페라극장 프로덕션·엘리야 모신스키 연출의 베르디 오페라로 나란히 10월의 무대에 오른다. 연극 '오델로'는 거장의 연출이 어떤 것인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무려 다섯 시간 짜리 대작이다. 오페라 '오텔로'('오델로'의이탈리아식 표기) 또한 세계 최고의 오페라 무대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극장이 자랑하는 대표작이다. 두 편 모두 놓쳐선 안될 걸작이다.
▶로열 오페라 '오텔로' 10월 9∼12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0―1300 '오텔로'는 작곡가 베르디 최후의 걸작이다. 극과 음악이 혼연일체를 이루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이 작품은 주역들이 부르는 노래도 대단하지만, 장대한 관현악과 합창이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로열오페라의 모신스키 판 '오텔로'는 1987년 초연 이래 아홉 차례나 재공연된, 로열 오페라의 간판 레퍼토리다.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이번 공연은 로열오페라의 스태프 뿐 아니라 컨테이너 여섯 개 분량의 의상과 소품, 세트를 통째로 들여오고, 출연진은 한국 성악가들로 채운다. 이 작품에 조연출로 참여했던 빌 뱅크스 존스가 모신스키의 무대를 그대로 살리고, 카를로 팔레스키가 코리안심포니를 지휘한다.
모신스키 연출의 가장 큰 특징은 셰익스피어 원작에 충실하다는 것. 철저한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스펙타클한 무대를 펼쳐보인다. 15세기 베네치아의 의상과 건축, 그림을 재현한 무대도 국내에서 볼 수 없던 것이지만, 1막은 특히 압권이다. 막이 열리자마자 천둥소리와 함께 레이저빔의 번갯불이 쏟아지는 가운데 자욱한 포연과 불타는 화염 속에 운명의 폭풍처럼 긴박한 음악이 들이닥친다. 미친듯 날뛰는 바다, 터키군을 물리치고 키프로스섬으로 귀환하는 전함의 위용이 생생한 음악으로 그려진다. 개선 장군 오텔로가 뭍에 올라 부르는 첫 노래 '에술타테'(기뻐하라)의 찬란함, 그를 칭송하는 민중들의 승리의 합창, 그를 시기하는 이아고 무리의 야유어린 술렁거림이 뒤섞인 1막은 오텔로의 비극을 예고하는 서장이자 모신스키 연출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이번 무대의 주역은 관록이 돋보이는 김남두(오델로)―우주호(이아고)―조경화(데스데모나)팀과, 오디션으로 선발된 신예 이동현―김승철―김은정 팀이 번갈아 맡는다. 오텔로 역은 웬만한 테너가 도전했다간 성대가 상할 만큼 무겁고 극적인 목소리를 요구하는 배역인데, 김남두는 국내외에서 여러 번 이 역을 맡아 이름을 알린 가수다.
▶네크로슈스 연극 '오델로' 10월 3일, 5일 오후 4시, 10월 6일 오후 3시 LG아트센터. (02)2005―0114 발트해 연안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한 이 나라는 수 백 년 간 주변국의 침략과 지배에 시달리면서도 강력한 문화적 전통을 지켜왔다. 우리 시대의 거장인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유럽 연극계의 판도를 바꿔놓은 세 연출가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 리마스 투미나스, 오스카라스 코르슈바노스가 여기 출신이다.
리투아니아 연극의 힘은 최근 2년간 네크로슈스의 '햄릿', 투미나스의 '가면무도회', 코르슈노바스의 '불의가면'이 잇달아 국내 무대에 선보이면서 찬탄을 불러일으켰다.
네크로슈스의 극단 메노포르타스가 공연할 '오델로'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독보적 존재인 그의 작품 중에도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2001년 동구권 최고의 연극제 '콘탁페스티벌'에서 최고 작품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비평가상을 휩쓴 화제작이다.
네크로슈스의 연극은 상징과 은유를 시각적으로 처리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오델로' 또한 그러하다. 물 불 흙 돌나무 바다 등의 자연적 요소가 극적인 이미지로 적극 활용되고,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그 깊이를 재는 거대한 자가 무대 한복판에 등장하는 식이다.
네크로슈스의 작품 해석도 독특하다. 셰익스피어 원작은 모든 이의 운명을 틀어쥔 '천재적 악마' 이아고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네크로슈스는 이아고의 비중을 주변 인물 정도로 줄이고 대신 오델로와 데스데모나의 관계에 초점에 맞춘다. 일반적으로 오델로는 피부색이 검고 나이가 훨씬 많은 인물로 그려지지만, 네크로슈스는 둘을 같은 백인으로 설정하고 나이 차이만 남김으로써 강하고 위엄있는 늙은 남자와 천진난만한 젊은 여인의 불안한 사랑 이야기로 바꿨다. 생기발랄한 데스데모나로 그가 선택한 배우는 리투아니아의 발레리나 에글레 스포카이테. 그녀의 춤추듯 가볍고 우아한 몸짓은 늙고 지친 오델로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이 비극을 더욱 처절하게 몰아간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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