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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49)국민당 총재시절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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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49)국민당 총재시절③

입력
2002.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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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2월24일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3당 대표의 영수회담이 열렸다.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신민당 이민우(李敏雨) 총재, 국민당 총재인 나, 민정당 노태우(盧泰愚) 대표 등 4명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전 대통령은 신민당의 개헌 서명 운동을 먼저 거론했다. "개헌 문제는 국회에서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헌법이 개정되면 그 헌법은 나중에 통일이 될 때까지 효력이 지속될 수 있도록 완벽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국을 대화로 풀어가기를 당부했다. "남북간에도 대화를 하는데 여야 간에 대화를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신민당 이 총재는 대선배시고, 국민당 이 총재도 정치를 잘 아시는 분이지 않습니까. 대화를 통해 원활하게 국정이 운영되도록 당부 드립니다."

이에 대해 이민우 총재는 신민당 개헌 서명운동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대통령께서 임기 중에 진정한 민주화 일정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개헌 서명운동이 법에 위반된다고 말하는데 우리 당은 견해가 다릅니다. 민주국가에서는 모든 권리가 국민에게서 나오므로 국민에게는 개헌을 요구할 청원권이 있습니다."

나는 딱딱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서명 운동과 관련해서는 정치적인 해결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국회 안에 헌법특위를 구성하는 문제도 꺼냈다. "개헌 등 정치 문제를 비롯해 경제 민생 문제 등은 모두 국회에서 여야가 흉금을 터놓고 대화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국회를 조건 없이 빨리 여는 게 중요합니다. 개헌과 관련해서는 솔직히 국민 절대다수가 직선제를 원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개헌 얘기가 나오자 전 대통령이 다시 말을 받았다. "헌법도 사람이 만든 것이니 완벽할 수는 없겠지요. 내가 지금 정권을 연장하려는 것도 아니니, 88 올림픽 등 민족의 대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뒤에 필요하다면 개헌을 논의하는 게 마땅한 도리 아닐까요."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대통령 입에서 '88 올림픽 후 개헌 논의'라는 표현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정부는 개헌 불가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못을 박기 위해 다시 한번 물었다. "올림픽 후 개헌 논의라는 것은 단순한 논의가 아니라 개헌까지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전 대통령은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민우 총재는 그래도 의심스러웠던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임기만 채우고 더 안 하겠다고 하면서 임기가 끝난 후인 89년에 가서야 개헌을 한다고 하면 이를 의심하는 국민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민주화 일정을 밝혀 주십시오."

전 대통령은 "나보고 89년 개헌을 보장하라는 말 같은데, 나는 88년에 그만 두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내가 보장한다는 것은 월권입니다. 개헌은 궁극적으로 국민이 보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속한 민정당이 공당으로서 국민에게 약속하고, 차기 대통령 후보가 개헌을 공약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국회 내에 헌법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데에는 동감합니다. 명칭 문제는 여야가 상의해서 결정할 수 있을 겁니다."

회담이 끝나 갈 무렵 나는 몇 가지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헌법연구특별위원회라는 명칭은 여야간 말이 많으니 연구라는 단어를 빼는 게 좋겠습니다. 또 경찰이 신민당사를 봉쇄해 회의조차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야당 탄압이므로 이런 일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전 대통령은 "서명운동에 대한 경찰의 제지는 다소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렇게 안 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또 명칭이 문제라면 그냥 헌법특별위원회도 좋지 않겠습니까"라며 회담을 마무리했다.

이 정도 내용이라면 회담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개헌 불가 입장에서 88 올림픽 후 개헌을 이끌어 낸 데다, 헌법연구특위도 연구를 빼고 헌법특위로 해 일시적으로나마 시국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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