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로 흩어졌던 가족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니 흐뭇하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한다. 둥그런 달을 보면서 둥실둥실 살고자(月圓,人圓也) 했던 여유가 우리 민족이 지향했던 추석의 의미이다.지난 주 또 한 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이별이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인간 체험이다. 불교에서도 8고(苦) 중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을 애별이고(愛別離苦)라 한다. 이별했던 사람이 다시 상봉하는 장면은 분명 감동적이다. 하물며 강제 이별의 상봉은 더 말해 무엇 하랴. 50여년의 생이별을 사나흘로 보상할 수는 없는 일이다.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아쉽고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잔혹한 현실이 야속해 땅에 주저 않아 통곡하는 장면을 전 세계의 TV에서도 놓치지 않고 방영했다. 세계의 선남선녀도 우리 민족의 이산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인 양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에 살면서 그러한 감동의 드라마에 눈물 지었던 나의 행동이 얼마나 감상적이었는지 반성한 일이 있었다. 10여년 전의 일이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던 대만인 친구가 그 장면을 보고 나에게 물었다. "너희 민족은 왜 그렇게 잔인해? 사람이 다 늙어 죽어 가는데 서로 못 만나서 울고 불고…, 왜 같은 민족끼리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는 거야? " 그가 무심결에 한 말은 큰 충격이었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져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모두가 당연시 하던 '감동의 드라마'가 한 외국인의 객관적 시각으로 그 허구성이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중국 본토와 대만은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더 첨예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1987년부터 이미 이산가족의 문제를 해결했다. 소위 '대삼통(大三通·우편 항공 무역)정책'을 지향하면서 양안관계는 급속히 진전 되었다. 서로 편지를 부치면 검열 없이 정확하게 배달 되고 명절에는 선물도 주고 받는다. 그리우면 찾아 가고 찾아 온다. 92년부터는 헤어진 부부가 재결합해서 살수 있도록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으르렁 거리며 갈등을 드러내는 관계이지만 인간의 정만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지혜와 실리적 사고가 만든 해법이었다.
무엇이 1,000만 이산가족을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고 누가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는가? 냉전 이데올로기는 사라졌고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는데 왜 우리 민족만 세계인이 지켜 보는 가운데 아직까지 이렇게 울부짖으며 만나야 하는가? 남북의 정치인은 자신의 '밥그릇' 집착에서 벗어나 순수한 민족의 일원으로 통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정치인은 민초가 겪어온 이산의 피눈물을 가슴 속에서 아파해 본 적이 있는가? 전 세계 민족들 앞에서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한을 품고 서럽게 살아 온 민초의 아픔을 생각하면 끊임없는 물음이 밀려 온다.
우리 민족은 반도가 가지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1,000번도 넘게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살아 왔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외세의 간섭과 침입은 대부분 우리의 내정 불안 속에서 이루어 졌다. 당파 싸움을 하며 이 파가 저 파를 외국에 고발하고 저 당이 이 당을 몰아내 주도록 비밀 특사를 외국에 파견하니 주변국에 얼마나 좋은 구실을 준 셈인가. 그들은 속으로 또 우리 나라를 얼마나 바보로 여기고 깔보았을 것인가.
남북 이산 가족의 상봉 장면은 감동의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수치스러운 자화상이다. 이것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앞선다. 남 보기가 부끄러우니 스스로는 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통일은 천천히 하더라도 이산 가족의 아픔은 촌음을 다투는 문제이다. 이번 한가위에도 둥그런 달이 더 야속해 보여 남과 북의 하늘을 보고 눈물지었을 이산가족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김병수 신부·가톨릭대 교수 andykim9@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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