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설가 업튼 싱클레어(1878.9.20∼1968)는 생전에 11부작 역사소설 '래니 버드' 시리즈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곤 했다. 그러나 그의 소설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것은 '정글'(1906)이다. 저기스 러드커스라는 리투아니아 출신 이주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시카고의 한 식육 가공 공장의 노동 현실을 핍진(逼眞)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미국 사회에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사회주의자였던 싱클레어는 '정글'을 통해 20세기 초 미국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환기시키고자 했지만, 독자들이 그 소설에서 읽은 것은 소시지 제조 공정의 불결함이었다. 소설이 발간되자마자 식품 가공 과정의 비위생성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면서 미국의 소시지 판매량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결국 그 해에 '신선 식품 및 의약품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이 법을 기초로 식품의약청(FDA)이 신설됐다.'정글'은 스토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1852) 이래 미국 사회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소설로 꼽힌다. 이 소설이 노동자 옹호로서가 아니라 소비자 옹호로 읽힌 데 대해 싱클레어는 "내가 겨냥한 것은 사람들의 가슴이었는데 뜻밖에 위장을 후려치고 말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러나 싱클레어는 결과적으로 미국 노동자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했다. 불량 가공 식품의 소비자들은 주로 노동자였으니 말이다. '정글'이 나오기 전에도 식품 가공 과정의 위생성 여부에 대한 의구심이 간간이 제기됐으나, 식품 자본가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던 의회 실력자들은 가공 식품의 무해성을 보장할 입법을 추진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정글'이 촉발시킨 전국민적 분노에 힘입어, 시어도어 루스벨트 행정부는 보수적 의회를 제압하고 입법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고종석/편집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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