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각 언론사로 중앙선관위의 보도자료가 하나 들어왔다. "연말 대선과 관련이 없으면 동창회 향우회 종친회를 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16대 대선기간인 11월27일부터 12월19일 사이에는 동창회 등의 송년 모임을 일절 열 수 없다"던 지난 6일 결정을 12일만에 스스로 뒤엎은 셈이다. 선관위는 관련 선거법 조항의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당연한 결정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럼 국회에서 대선 전에 법을 바꾸지 않으면 다시 6일 발표했던 무시무시한 규제를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냐"는 의문이 들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법 개정 없이 현행 규정의 해석만으로도 단속을 신축적으로 할 수 있다"고 쉽게 답했다.
지난 12일간 모든 국민과 관련 업계에 초래됐던 혼란과 혼선에 비하면 선관위의 이런 태도는 너무나 안이하고 태평해 보인다. 선관위는 6일 각종 송년모임을 획일적으로 금지하면서 분명히 "선거법에 그렇게 규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었다. 그런데 12일만에 '탄력적인 법규해석'을 명분 삼아 스스로 이를 뒤집은 것은 지나친 행정 편의주의이자 자의적인 법 해석이다. 게다가 2000년 국회가 문제의 규정을 선거법에 넣은 게 바로 선관위의 건의 때문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선관위의 현실감각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선관위 관계자들도 분명히 연말에 각종 송년 모임을 챙겨야 하는 보통 사람들일 것이다. 법에 문제가 있다면 법 자체를 고치고, 법 해석만으로도 될 일이라면 가능한 법을 누더기로 만들지 않아야 할 텐데 두 가지를 모두 하자는 선관위의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공명선거를 위한 선관위의 의욕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비현실적인 법을 만들고 고치는 일을 반복하거나,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법 해석을 바꾼다면 선관위는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리고 국민의 신뢰도 잃게 될 것이다.
신효섭 정치부 차장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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