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는 마음은 착잡하다. 유례없는 태풍피해에 집값파동과 물가불안까지 겹쳐 올해의 추석은 어느 때보다 우울하다. 차례는 그만두고 성묘할 조상의 묘까지 쓸려 내려간 수재민들은 오히려 명절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날씨까지 쌀쌀해져 벌써부터 겨울을 날 일이 걱정이다. 연휴기간이 짧은데다 고향이 폐허로 변해 아예 귀성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다. 귀성객들의 선물 보따리에는 즐거움보다 시름과 걱정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한가위 달마저 보기 어렵다니 어디서 즐거움을 찾아야 하나.그러나 우리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나누고 돕는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달려가 수해 극복에 온 힘을 쏟은 자원봉사자들의 추석은 어느 때보다 보람 있을 것이다. 수재의연금 모금 이래 처음으로 1,000억원을 넘은 성금에는 이웃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는 시민의식과 온정이 가득 들어 있다. 또 많은 사회단체와 개인들이 수재민들과 함께 추석을 보내자는 운동을 펼쳐 흐뭇하게 한다.
그런 마음과 정성으로 이번 추석만큼은 검소하고 보람있게 보내도록 하자. 60여년 전에도 극심한 물난리를 당했던 강릉의 한 부잣집은 당시 수재민들을 생각해 하루 세 끼 식사를 두 끼로 줄이고 반찬수도 줄였다고 한다. 수재민들뿐만 아니라 혼자 사는 노인들, 돌아보는 이 없는 불우한 이웃, 타국살이에 설움이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 모두에게 명절의 기쁨이 나누어져야 한다. 이번에도 여전히 길은 막히겠지만, 귀성길·귀갓길에는 서로가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도록 하자. 우리는 월드컵 때 '꿈은 이루어진다'는 단순하고 평범한 듯한 말에서 희망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어렵고 힘든 때이지만 서로 꿈을 나누고 키우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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