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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47)국민당총재 시절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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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47)국민당총재 시절①

입력
2002.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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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3월22일 국민당 총재에 취임하면서 나는 대통령 직선제를 다시 한번 주장했다. 총재 취임 회견에서 "국민 여망에 따라 반드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회 내에 헌법개정 특별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헌법특위 제안은 각 신문이 주요 기사로 다루었다.이후 헌법특위는 1년 이상의 여야 논란을 거쳐 결국 86년 6월24일 마침내 설치됐다. 나는 지금도 당시 헌법특위 문제를 처음 거론해 국회 안에 헌법 개정의 장을 두는 계기를 만든 것을 뿌듯하게 생각한다.

12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가장 먼저 부딪친 문제는 학원안정법 파동이었다. 학원안정법은 우리 사회 저변까지 반미 기조를 확산시킨 서울 미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이 발단이었다. 85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5주년을 맞아 학생운동의 초점은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맞춰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삼민투 소속 학생 73명이 5월23일 서울 미 문화원을 점거했다. 이들은 광주 사태에 대한 미국의 책임 인정과 공개 사과를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 갔다.

농성 학생들은 5월28일로 예정된 12년만의 남북 적십자회담에 미칠 파장을 고려, 72시간 만에 자진 해산했다. 그러나 정권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했다.

정부 여당이 학원안정법을 제정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 처음 떠올린 것은 공화당 시절의 학원보호법안이었다. 당시 공화당은 6·3 사태로 위기 의식을 느끼자 학원보호법을 만들려고 했으나 각계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다.

20년 만에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국민당은 신민당과 함께 힘을 모아 학원안정법 저지에 나섰다. 야당이 연대하는 등 반발이 완강하자 정부와 여당은 영수회담 추진으로 돌파구 마련을 시도했다.

8월15일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신민당 이민우(李敏雨) 총재와 영수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와 만났다. 나로서는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 자리에는 민정당 노태우(盧泰愚) 대표도 있었다.

학원의 근본적 안정을 위해서는 직선제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우선 학원안정법의 부작용부터 강조했다. "이 법은 전혀 실효를 거둘 수 없습니다. 교수가 교권을 가지고 학생을 선도해야지, 그 밖에 다른 무엇으로도 학생을 선도할 수 없습니다."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을 받았다. "일부 극렬 학생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 법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학원이 불안하면 정치와 사회도 불안하고 경제도 되지 않습니다." 옆에 앉아있던 노 대표도 거들었다. "이 총재께서 제기하신 문제는 우리 당에서도 검토했습니다만 이 법은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노 대표에게 다소 언성을 높였다. "민정당이 대통령을 올바로 보좌해야 합니다. 일이 잘 수습되면 그게 대통령을 위해서 좋은 일입니다. 너무 민정당 입장만 강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전 대통령을 향해 말을 이었다. "9월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한다고 들었는데 이 법을 통과시키고 어떻게 유엔 연설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전 대통령은 이 말에는 약간 뜨끔했는지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나는 내친 김에 직선제 얘기까지 꺼냈다. "많은 국민들이 직선제를 바라고 있습니다. 국회 안에 헌법특위를 만들어 여야가 상의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전 대통령의 생각은 확고했다. "헌법도 시대 발전에 따라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헌법을 고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다수 국민이 찬성했는 데 한번도 시행 안하고 고치는 것은 약속 위반입니다."

청와대 회동은 나름대로의 효과가 있었다. 이튿날 학원안정법 보류 성명이 나왔다. 나는 지금도 내 설득이 주효했다고 믿고 있다. 또 내 정치 생활에서 보람 있었던 일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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