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8일에도 전날 북일 정상회담에서 튀어나온 납치 피해자 생사 확인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신문들은 이날 일제히 1면 제목을 '납치 8명 사망, 5명 생존' '김정일 총서기 사죄' 등으로 달고 분노와 슬픔에 빠진 피해자 가족들의 움직임을 상세히 보도했다.정치권은 이같은 여론을 의식해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평가를 자제하고 납치 피해자 가족들을 위로하며 국내 분위기를 지켜 보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이날 정부·여당 연락회의에 참석, 정상회담 결과를 연립 3여당 당수와 각료들에게 설명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납치 피해자 가족의 심정을 생각하면 견딜 수 없지만,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기 위해 국면을 타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에 합의한 이유를 강조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또 "비판은 달게 받아들이겠다"면서 "정치적 결단이었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열었다", "예상 이상으로 북한의 양보를 얻어냈다"는 등 회담의 성과를 평가하면서도 진상규명, 생존자 귀국 등 납치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을 빼놓지 않았다.
야당인 민주당은 "총리가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에 급급해 안보상의 국익을 희생했다"면서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문제를 쉽게 받아들였다"고 비난했다. 자유당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잔혹한 사태"라며 "사망 정황 등이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한 대화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공산당과 사회당은 북일 공동선언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평가한 뒤 납치의 진상규명과 북한에 대한 항의를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아베 신조(安部晋三) 관방부장관을 납치 피해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보내 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아베 부장관은 "참으로 안타까운 결과가 나와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처음 북한측으로부터 소식을 듣고 나도 총리도 말을 잃었다"고 위로했다. 아베 부장관은 또 "교섭의 실마리가 풀렸고 이제부터 우리의 속도 조절로 교섭에 임할 수 있다"면서 진상규명과 생존자 귀국 등을 추진할 생각임을 밝혔다.
고이즈미 총리도 아베 부장관을 통해 위로의 말을 전하고 27일 직접 가족들을 만나 회담 결과를 다시 설명하고 가족들의 요구를 듣겠다고 약속했다.
가족들은 생존자를 한 달 이내에 귀국시킬 것과 사망원인의 규명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들은 특히 북한이 사망원인을 '병사나 재해'라고만 밝힌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납치 피해자 가족들과 후원단체들은 또 납치에 직접 책임이 있는 북한 정부와 이 문제를 20여년 간 방치해 온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할 방침이다. 사망자 가족들은 이와 함께 직접 북한에 가서 생활상과 사망 당시의 상황 등을 듣고 싶다는 의사도 밝히고 있다.
한편 일본 언론들은 납치 사건이 발생한 1977∼1983년에 이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의 지위를 굳히고 대부분의 중요 사항을 지휘·결정했다는 점을 들어 납치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언론들은 또 일본인 납치가 북한의 국가범죄라고 지적하면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국교정상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