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鄭夢準) 의원은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이후 거세게 분 바람을 타고 대선에 도전했다. 그 정풍(鄭 風)의 배경에는 수려한 외모의 4선의원, 세계 축구계 거물이라는 비결에 못지않은 '경제인 정몽준'이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제 리더십에 관한 한 대선후보 가운데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경제를 잘 아는 대통령보다는 시장경제를 이해하고 그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비전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학력과 경력에서 정 의원은 '경제'로 중무장해 있다. 1975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 컬럼비아대를 거쳐 MIT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땄다. 존스 홉킨스대에선 '일본에서의 정부-기업관계'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기업경제이념' 등 저서와 논문들 역시 경제에 집중돼 있다.
그는 82년부터 현대중공업의 실질적인 오너로 경영을 맡아왔지만 경영능력을 검증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78년 대리로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그는 재벌 2세만 가능한 고속승진을 거듭, 82년 사장, 87년에는 36세의 나이에 회장에 올랐다. 현대의 4대 주력기업(건설·자동차·중공업·전자)의 하나를 맡은 것은 그의 리더십을 인정받아서라기보다는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이 그를 총애한 결과였다. 또 입사 한달 만에 유학을 떠나 2년 만에 돌아왔고, 12대 총선에 출마하려다 도중하차한 후인 85년 5월부터 2년 간 미국 유학(박사과정)을 떠났다. 그래서 그가 실질적으로 현대중공업 경영을 지휘한 것은 80년 MBA 취득 이후 85년 재유학까지 4년 정도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론만 배워 경영에 뛰어든 정 의원을 두고 당시 현대그룹 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정교하고 세련된 경영보다는 투박하면서도 돌파력과 근성 등을 강조하는 현대그룹의 전반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상외로 빨리 현대적 분위기에 적응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280만평 울산공장 구석구석을 훑고 다녔고, 해외영업을 위해 연중 100일 이상 해외에 체류하는 정열적 활동을 펼쳤다. 또 선진경영 이론을 현실에 접목시켜 청년중역회의(주니어보드) 같은 경영혁신을 추진하고 통계를 중시하는 사내문화를 정착시켰다. 회사는 이 기간에 오일쇼크와 불황을 벗어나, 매출이 2배 가량 늘고,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했다. 84년 마침내 미쓰비시 조선소를 누르고 세계 제1의 조선소에 등극했다. 그를 지켜본 전직 현대그룹 인사는 "만능 스포츠맨인 그는 경영인의 자질인 승부 근성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이때 기업인 정몽준의 스타일은 그를 '리틀 정'으로 불리게 했다. 어눌한 말투지만 명쾌한 논리로 임직원을 장악하는 카리스마, 급한 성격이나 추진력, 또 일처리에 완벽을 요구하는 것들이 아버지를 빼닮았다는 것이다.
재벌에 대한 비난과 찬사처럼, 재벌의 아들인 정 의원에 대한 이런 평가들도 다소 엇갈린다. 조직의 쓴 맛을 보며 자신을 단련할 기회가 없이 어느날 갑자기 많은 사람 위에 군림하게 되는 2세들은 독선으로 흐르기 쉽다. 정 의원이 남의 의견을 잘 듣지 않고 고집이 세다는 평가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중공업의 성장을 정 의원의 업적으로 연결짓는 것에도 이견이 많다. 중공업은 올 2월 현대그룹에서 분리되기 전까지 그룹 우산 아래 놓여, 모든 경영판단이 그룹차원에서 결정됐다. 중공업의 한 인사는 "현대그룹에서 따로 떼내고, 거기서 다시 정 의원의 성과를 찾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며 "모든 것은 정주영 창업주가 진두지휘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스스로 내세우는 경영의 성과 중 하나는 종업원 복리후생 부분이다. 중공업 안동석 이사는 "정 의원은 공장내 30여곳 식당의 음식의 질 같은 후생복지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했다. 중공업은 사원주택 1만6,000세대를 지어 직원들 재산증식에도 기여했고, 자녀학자금 전액지원 등 다양한 복지혜택을 주고 있다. 직원 60%가 거주하는 울산시 동구에는 문화예술회관 7개에, 잔디구장 7개가 있어, 주민들이 맨 땅에서 공을 차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종업원 복지라기보다는 울산이 지역구인 국회의원 정몽준의 지역구 관리라고 폄하하는 시각도 있다.
정 의원은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지려 한다는 비판에 대해 록펠러와 같은 부유한 정치인의 진보적 성향을 강조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을 보수로 분류하는 이분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의 기업정책은 친재벌적 입장을 옹호하고, 노조관은 전향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 의원이 밝힌 경제 주요정책 8가지는 자유시장경제 원칙과 기업규제 최소화, 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물류·유통구조 개선 등 기업관련 내용이 7개이고, 나머지 1개는 형평에 맞는 경제정책 추진이다. 재계의 주장과 맥이 닿는다.
정 의원 출마선언에 앞서 현대중공업 노조와 현대자동차 노조 등 일부 옛 현대그룹 노조들은 정 의원의 대선출마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 찬물을 끼얹었다. 이들이 문제삼는 것은 정 의원의 자질보다는 92년 대선때처럼 회사가 정치의 회오리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정주영씨 낙선 이후 현대그룹이 당한 불이익을 생생히 기억하는 이들은 과거 악몽이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한 직원은 "정 의원이 당선이 돼도 회사에 좋은 일이 생기지 않고, 낙선해도 회사에 손해되는 일이 없이 이번 선거가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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