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이라크 전쟁 불가피론에 모아져 가던 국제 여론이 이라크의 유엔 무기사찰 수용 의사 표명 이후 중대한 변화를 맞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여전히 강경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기타 주요국들은 한결같이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이견이 깊어질 경우 미국이 영국의 협력만으로 독자 행동에 나서기란 쉽지 않으며, 이라크는 사찰을 명분으로 최소 수개월 동안 전쟁을 억지하는 효과를 거둘 전망이다. 이라크의 유엔 무기사찰 수용 발표 직후인 17일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과거의 실패를 재현하지 않기 위해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새로운 제재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기 사찰을 언제 어느 곳에서 누구라도 시행할 수 있도록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역시 이날 이라크의 태도 변화와 관련한 즉답을 피한 채 "지금은 유엔이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며 이라크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상하원 의회 지도자들과 만난 뒤 "수일 내에 대이라크 행동 계획을 의회에 제출하겠다"며 "의회가 10월 초에 이를 표결에 부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까지 유엔의 승인을 조건으로 전쟁을 포함한 강경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던 기타 주요국들은 영국을 빼고 모두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안보리 회의에서 러시아의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장관은 "필요한 모든 조치들을 취했다"며 "당장 새로운 결의안이 필요치 않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여부는 유엔이 무기 사찰을 통해 밝힐 것이라며 미국의 일방적인 주장을 사실상 거부했다.
탕자쉬앤(唐家璇) 중국 외교부장도 "이라크의 결정은 국제 사회가 진정 보기를 원했던 것"이라며 전폭 환영 의사를 표시했다. 미국의 전쟁 불사론으로 상당히 기울었던 프랑스의 도미니크 드 빌팽 외무장관도 "지금 필요한 모든 것은 행동"이라며 "후세인은 자신의 말을 지켜야 하며 유엔 사찰단도 이라크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층 벌어진 안보리의 의견 대립을 의식한 듯 파월 장관은 회의 과정을 비공개로 처리하도록 요구하기까지 했다.
안보리 상임 이사국은 아니지만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이라크의 결정을 환영하며 사찰에서 유엔이 필요로 할 경우 특수 장비를 지원할 것이라고 의욕을 냈다.
결국 유엔 사찰을 평가절하하고 전쟁으로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겠다던 미국의 계획은 국제사회의 이론으로 당장은 주춤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됐다. 이라크가 국제사회를 속이고 있다는 공세를 늦추진 않겠지만 유엔 사찰 중에 전쟁을 감행한다는 것은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한편 미 의회는 11월 5일 중간 선거 전이라도 대 이라크 무력 사용을 승인할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18일 보도했다. 톰 대슐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는 "중간 선거 전에 의회의 투표가 실시될 것"이라며 "문제는 결의안의 내용"이라고 말했다. 당초 공화당과 민주당은 대 이라크 무력 사용 승인 투표를 각각 중간선거 전과 후에 해야 한다고 당론이 엇갈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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