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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병역을 고뇌하는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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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병역을 고뇌하는 젊은이들

입력
2002.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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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칼럼을 보고 미국에 사는 노대균씨가 이메일을 보내 주었다. 80년대 초 도미한 그도 2∼3년 마다 '두 번 입대하는 꿈'에 시달린다고 한다. 또 군인이 아닌 현대판 노예로 서부전선 임진강가의 벙커건설에 동원되는 악몽도 꾼다고 한다. <간혹 당숙부님의 군 복무를 생각하며 위안을 삼습니다. 이분이야말로 두 번 입대한 분이죠. 고교 재학 중 군번 없는 병사로 징집되었다가 살아 제대한 후, 대학을 마치고 재징집되어 5년을 복무했답니다. 처음 복무는 군번이 없어 증명할 길이 없었죠.> 노대균씨는 미국에 있는 중국 과학자들과 얘기하다가, 그들 중 아무도 군대에 복무한 적이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고 한다. 편지 끝에는 한국 젊은이를 위한 희망을 적었다. <바라건대 조국이 하루 속히 통일되고, 최소한의 정규군을 유지하여, 남북한의 모든 남자들이 그들의 의지에 역행하여 군에 가는 일이 없기를…>

한국 남자에게 군복무는 숙명처럼 되어 있다. 그것은 젊은이에게 대학입학, 취업, 결혼 못지않게 육중한 무게를 지닌다. 9월에도 병역 사건이 줄을 이었다. 6일 대학생 50여명이 서울 명동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10만인 서명운동'을 벌였다. 10일 종교적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세 젊은이에게 징역 1년6개월씩이 구형되었다. 12일은 대학생·대학원생 17명이 기자회견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공개선언'을 했다.

병역을 거부해온 젊은이는 대개 '여호와의 증인' 교인이다. 집총 거부로 교도소에 수감된 여호와의 증인은 약 1,600명에 이른다. 지난해 불교신자 오태양씨도 이 대열에 합류하여 사회를 놀라게 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거부한 현행법에 의해 인권이 침해 당하고 있다'는 진정서를 내고 입대를 하지 않았다. 또 지난달에는 유호근씨가 '전쟁반대와 평화실현'이라는 비종교적 이유를 최초로 내세우며 거부하여 파장을 증폭시켰다. 이런 흐름 속에 현재 헌법재판소가 병역법의 위헌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병역 거부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따뜻하지 않다. 한 조사에 따르면 72%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하고 있다. 반대자의 50%는 "병역은 의무이므로 종교적 이유로 거부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거부가 병역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견해도 전체의 37%였고, 남북대치 속에 이를 인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177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헌법에서 처음 규정된 이래, 징병제를 실시하는 78개국 중 30여개국이 인정하고 있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는 "유럽국가에서는 1920년대부터 유럽적 민주주의와 병역거부권 인정은 동의어로 통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양심적 거부자들은 병역보다 긴 대체복무를 원한다. 한국도 그러하다. 대만의 대체복무자는 소방업무, 의료서비스 등에서 일반 군인보다 11개월이 많은 33개월을 근무한다.

1995년 유엔인권위 결의안도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정당한 인권으로 인정했다. 양심적 거부는 어느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자는 것이 아니라, 인권과 양심의 자유 문제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양심의 자유는 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자유이며, 국가의 존재보다 근원적인 자유"라며 대체복무제를 지지한다.

긴 역사로 볼 때 남북대치는 일시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우리의 삶과 사유는 평화 우선의 바탕 위에 자리잡아야 한다. '병역거부와 평화'라는 인권적 외침이 남북한 보수세력의 독주를 견제함으로써, 관계를 오히려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것도 헛되지 않다. 많은 젊은이들이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무 사이에서 고뇌하고 있다.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사회의 진보적 사고(思考)가 필요하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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