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조폭들의 승리. 지난해 추석, '조폭마누라'(전국 519만명)가 극장가를 휩쓸더니, 이번에는 '가문의 영광'이다. 13일 개봉한 한국영화 트리오 중에서 단연 1위. 3일 동안 전국 59만2,000여명을 불러들였다. 2위인 '연애소설'의 2배 가까이 된다. 기세는 평일(하루 10만여명)에도 꺾이지 않고 있다. 상영 스크린도 처음 173개에서 193으로 늘었다.'조폭마누라'가 여자 조폭이란 설정으로 당시 온갖 게이트로 답답한 관객들에게 통쾌한 반전이란 대리만족을 주었다면, '가문의 영광'은 조폭 가족을 통해 가문과 학벌, 가족 중심의 우리 사회를 장난스럽고도 밝게 그려낸 것이 성공의 비결. 물론 김정은이란 스타와 시네마서비스란 최강의 배급력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앞서 개봉한 '보스상륙작전'의 선전까지 감안하면 "이제 조폭 코미디는 한물 갔다"는 말은 엉터리. 어떻게 변주하고, 다른 소재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여전히 흡인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순정멜로 '연애소설' 역시 지난해 '엽기적인 그녀'(485만명)의 스타 차태현과 '번지점프를 하다'의 이은주가 있지만 '가문의 영광'보다 관객층이 엷은 것이 그대로 흥행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셈. 외화 '로드 투 퍼디션'의 선전도 어느 정도 예상한 일. 톰 행크스에, 마피아 이야기, 그리고 가슴 뭉클한 아버지의 아들사랑이 그야말로 추석용이다.
돈보다 무서운 것이 소문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91억원이란 사상 초유의 제작비도 제작과정에서의 온갖 불화에 대한 소문, 예고편을 본 사람들의 "황당하다" "너무 장난을 친다" "유치하다"는 말을 잠재울 수 없었다. 고작 7만2,900명이 보았을 뿐이다.
극장 몇 군데서 오래 상영할 수 있는 예술영화와 달리 상업영화는 대부분 개봉 첫 주에 승부가 판가름 난다. 역전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관객들은 대세를 따르기 때문. '기적'이 없는 한 추석 극장가의 희비는 이미 결정됐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 로맨틱한 연애를 꿈꾸는 당신―'연애 소설'
카페 아르바이트생 지환(차태현)은 수인(손예진)을 보고 첫 눈에 반하지만, 애인보다 친구로 지내자는 수인의 제안에 지환과 수인, 수인의 단짝인 경희는 각별한 친구가 된다. 여자 둘, 남자 하나의 묘한 커플의 인연. 감정이 엇갈리던 셋은 오해로 헤어지게 되고, 지환은 수년 후 그녀들의 '비밀'을 알아내기 시작한다. 요즘처럼 '동성애'란 말이 유행하는 시점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젊은 날의 삽화.
● 무조건 재미있는 영화야―'가문의 영광'
조폭 영화와 로맨틱 코미디를 대충 버무려 놓았고, 결말에는 비장한 가족애 마저 강조한 충무로의 전형적인 코미디. 재미있는 것은 비평가들의 혹평에도 불구, 흥행에서 가장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 술 취한 호남 조폭의 딸 장진경(김정은)이 서울대 법대 출신의 벤처기업 대표 박대서(정준호)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 여자의 오빠들이 나서 둘을 결혼시키려 한다. 자녀와 함께 관람한다면, 손으로 삑삑 소리를 내며 성행위를 암시하거나 'X을 치다'등 수준 낮은 묘사와 비속어 때문에 낯뜨거울 수 있다.
● 나는 어떤 아버지인가―'로드 투 퍼디션'
1930년대 대공황기. 마피아 두목 루니(폴 뉴먼)를 정신적인 아버지로 생각했던 조직원 설리번(톰 행크스). 그러나 두목의 아들이 저지르는 살인장면을 목격한 자신의 아들이 생명의 위협에 처하자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일어선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을 톰 행크스의 비정한 연기로 감상할 수 있다.
● SF 액션이 최고―'레인 오브 파이어'
런던의 지하건설 현장에서 잠자던 백악기 익룡이 깨어나 무서운 속도로 번식을 시작한다. 익룡이 인간의 문명을 파괴하면서 인간은 땅밑으로 숨어 들고, 익룡을 깨운 소년(크리스천 베일)이 자라나 익룡 퇴치자로 나선다. 여기에 미 해병대 출신 용병(매튜 매커너히)이 가세하며 익룡과 인간의 대결이 펼쳐진다. 소년들이 흥분할 만한 영화.
● 명절엔 홍콩영화―'버추얼 웨폰'
와이어 액션과 컴퓨터 그래픽을 결합한 대형 액션물. 암살자 자매로 나오는 수치 막문위 등 여배우들의 연기 대결이 볼만하고, 과장된 액션이 세련된 테크노 화면에 펼쳐진다. 그러나 '매트릭스' 만큼의 완성도를 기대한다면 실망한다.
● 난 웃음이 좋아―'보스 상륙작전'
MBA 출신 거물 조폭(김보성)을 잡으려 막가는 검사(정운택)가 룸살롱을 개업한다는 황당한 발상의 영화. 한나라당을 풍자했다는 논란이 있는 바로 그 영화. '두사부일체' '패밀리'의 맥을 잇는 지극히 대중 영합적인 코미디로 '감동'을 기대해서는 곤란. 다만 정운택 안문숙 등 코믹 연기자들의 치고 받는 코미디와 성적 농담이 주는 잔재미로 의외로 막강한 흥행력을 유지하고 있다.
● 진정한 사랑에 대해 알고 싶어―'오아시스'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 신인연기상 등 5개 부문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세번째 영화. 사회부적응자 종두(설경구)는 자신이 치어 죽인 청소부의 딸인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문소리)를 찾아간다. 두 사람의 사랑을 세상은 허락하지 못한다. 두 배우의 살 떨리는 열연을 보고 나면 어깨는 무겁지만 가슴엔 감동이….
● 미래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임포스터'
뛰어난 과학자 스펜서 올햄(게리 시니즈)이 하루 아침에 행성에서 보낸 스파이로 몰린다는 내용의 영화. 2079년이 무대.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 리콜' 의 미국작가 필립 K. 딕 (1928∼1982)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마지막 반전이 흥미롭지만, 스펜서가 지구방위대에 추적당하는 장면은 지루하다. 화상 휴대폰, 주인의 기분에 따라 음악까지 틀어주는 음성 인식 샤워기, 하늘을 날아다니는 버스 등이 미래를 실감나게 만든다.
'아저씨' 감독이 만들었다 하기엔 꽤나 젊은 감각의 영화. 게임방 아가씨 희미(임은경)를 짝사랑하는 중국집 배달원 주(김현성)가 희미와 똑같이 생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라는 게임속에 빠져든다. TTL 소녀 임은경의 대사는 "라이터 사세요"가 거의 전부. 화려한 비주얼, 패러디 등 젊은이들이 좋아할 요소가 적잖지만 너무 키치적인데다 엄숙을 자처하는 불교 철학의 논리가 무겁게 느껴져 대중성이 떨어진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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