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에서 1년간 한국역사를 강의한 적이 있다. 당시 학생들 중에는 한국 출신 입양아나 주로 어머니가 한국인인 혼혈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은 학기말에 써낸 강의평가에서 '선생님이 진짜 한국인으로 나를 대해준 첫 한국사람이었다'고 썼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기쁨보다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버리고 외면했던 한국에 대해서 알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왜 한국사회가 자신을 머나먼 이국으로 보내야 했으며 한국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아야 하는지 알고 싶어했다.특히 입양아들은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많은 방황을 겪는다. 적응하지 못해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그냥 국내 보호시설에서 수용되어 자랐다면 어려웠을 위치에 당당히 서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양부모 중에는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성껏 입양아를 키우고 그들에게 한국적 정체성을 유지시켜 주려고 노력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더욱이 정신 또는 지체장애아를 그것도 여러 명 키우는 이들을 보면서 감동을 느낀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반면에 그들은 자라면서 오히려 한인사회에 의하여 다시 한번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고 하며 서운함도 적지 않았다. 이미 외국 국적과 성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어를 할 수 없는 그들을 단지 동정의 대상으로 여길 뿐 한인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완전한 외국인도 될 수 없고 다시 한국인이 될 수도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생부모를 찾는다는 입양아 소식을 접할 때가 있고 재회하는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자신을 받아들여 주는 것이다.
설령 생부모를 찾았더라도 그들 대부분은 앞으로 그들이 자란 사회에서 살아갈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번 입양을 보냈으니까 이제 우리 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들이 그 사회에서 잘 적응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자립에 필요한 경제 지원을 해주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으며 그들끼리 모일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주선해 주어야 한다.
한국방문 프로그램의 확대도 중요하지만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가정과의 결연을 주선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아울러 모국에서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 외국인 특별전형 기회를 부여하고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아울러 국내에 돌아와 정착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적응훈련과 취업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요즘 이야기되고 있는 원어민 교사 채용에 있어서 그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해외입양을 '고아수출'이라고 매도하며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보아 왔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버려지는 아이들의 수는 전혀 줄지 않고 있다. 더욱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싫어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여전히 핏줄을 중요시하는 나라에서 국내 위탁가정이나 입양을 하겠다고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 대한 보호시설을 계속해서 정부가 부담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따라서 해외입양의 중단여부는 사회적인 공론화가 필요하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민족의 개념은 단일민족의 신화에 빠져 혈통, 언어, 국적 등을 모두 갖추지 못하면 배제시키는 것이었다. 민족의 생존이 어려웠던 시절 그러한 방어적, 폐쇄적 민족주의는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유효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포용의 민족주의를 가져도 될 만큼 충분히 성장하였다. 외국에서 우리 민족이 받는 인종차별에 분노하는 만큼 우리 내부의 차별은 이제 끝내야 한다.
주진오 상명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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