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생각컨대 특정 사안에 대해 대국민 의식개선 차원으로 전개된 캠페인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국민들의 실천을 이끌어낸 슬로건이 아닌가 싶다. 출산억제정책은 평균 자녀수가 6명을 넘나들던 6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가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은 먹는 입 하나 더는 것이었기에, 이 캠페인은 국민들에게 정서적으로 호소하는 데 더없이 효과적이었다.
그로부터 30∼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정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다. 2001년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연령별 여성 1인당 출산율을 평균한 값)이 대표적인 저출산국인 프랑스나 일본보다도 낮은 1.3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인구구조를 유지하는 인구대체 수준인 2.1에도 현저히 못 미치는 수치이다. 가히 여성들의 '출산파업'이라고 할만하다.
이러한 출산율 저하에 따른 사회적 우려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입수능 응시자수의 감소, 군병력 자원 부족으로부터 시작해 미래의 노동력 부족, 노령인구의 급증에 따른 사회보장연금의 고갈, 청·장년층의 연금부담 증가에 따른 세대간 갈등 등이 예견되고 있는 것이다.
30∼40년 전에 효력을 발휘하였던 바로 그 슬로건,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캠페인을 다시 시작하자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이제는 출산억제 정책으로서가 아니라 역으로 출산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물론 회의적이다. 지금의 저출산 문제는 정서적으로 호소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까운 일본의 예를 들어 보자. 일본은 94년 출산율이 1.57로 떨어지자 이를 '1.57 쇼크'로 받아들이고,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 범정부차원의 보육서비스 지원 확대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나아가 최근에는 1조엔(약 10조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인구 늘리기에 나섰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남성의 산후휴가를 활성화하고 육아휴직 중인 직장인에 대해서는 연금보험료를 면제하는 한편 불임치료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 육아기간 동안에는 근로시간이 정규근무시간 이하가 되더라도 정사원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한 자녀 더 갖기 차원의 소위 '플러스 원'제도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모성보호의 강화와 육아대책을 마련하여 추진 중에 있다. 지난해 출산휴가를 90일로 연장하고, 육아휴직 제도를 확대 적용하는 등 모성보호 관련법을 개정하였으며 올해 초에는 가정의 육아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보육관련 부처가 합동으로 '보육사업 활성화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그리고 전라남도 무안군과 강원도 인제군 등 처럼 10만∼30만원 수준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하방경직성을 띠고 있는 출산기피 현상을 해소하는 데 정부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출산기피 현상에 대한 범사회적인 근본적인 진단과 처방이 마련돼야 한다. 예를 들어 70년대에나 있을 법한 소위 결혼퇴직제가 아직도 일부 남아있고 출산과 동시에 직장을 떠나야 하거나 같은 이유로 고용이나 승진에서 차별이 가해지는 한, 독신여성의 증가를 막거나 또는 결혼 후 자녀 출산을 기피하는 여성들에게 출산장려를 호소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특히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자기 성취 욕구의 강화 등 사회의 전반적인 가치관이 변화하였다. 이제는 여성의 인적자원 개발 여하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좌우되는 시대에서 기업이 솔선수범하여 고용, 승진, 근로조건의 남녀 차별적 관행에 대한 구조적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일본은 출산율 1.57 그 자체를 '쇼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리는 출산율 1.3 시대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무관심한 그 자체를 '쇼크'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다.
한명숙 여성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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