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 자신 있습니까." 며칠 전 사석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정몽준(鄭夢準) 의원은 약간 머뭇거리다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괜찮을 것 같아요."애매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든 대답이다. 이런 어법을 두고 소탈하다거나 겸손하다고 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꺼벙이'란 별명도 이런 특징과 통한다.
전혀 다른 평가도 있다. 몇 년 전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지역구인 울산 동구를 돌던 정 의원은 수영장을 관리하는 현대중공업 관계자를 질책했다. 수영장 앞에 '가뭄으로 무기한 폐업함'이란 글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가뭄이 끝나면 다시 열겠습니다' 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이런 섬세함과 치밀함이 월드컵 유치 성공의 바탕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에게는 "바깥 사람에게는 부드럽지만 직계 부하 직원들에게는 냉혹하다"는 얘기도 따라 다닌다. 부하 직원에게 폭력을 쓴 적이 있다는 소문까지 있다. 지구당의 한 간부는 "가까운 부하 직원을 심하게 꾸짖은 경우가 있지만 폭력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그는 또 "꾸중을 하더라도 바로 전화를 해 달래는 등 뒤끝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직원 손병주(孫炳柱·44)씨는 "회사를 돌다가 근로자들의 족구 시합에 스스럼 없이 끼어 들어 함께 즐기는 것을 보면 소탈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1951년 가족들이 피란했던 부산 범일동에서 태어났다. 고(故) 정주영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8남1녀 중 6남이지만 그의 생모를 둘러싼 소문들이 있어왔다. 정의원측은 굳이 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가족과 함께 부산에서 2년 가량 살다가 서울로 올라 와 장충초등학교와 중앙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박근혜(朴槿惠)의원 김승연(金昇淵) 한화그룹 회장 등과 초등학교 동기동창이지만 박 의원과는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었다.
중학교 진학 때는 경기중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정 의원은 "필기시험 다음날 쇠꼬챙이에 찔려 크게 다치는 바람에 체력장 성적이 나빴다"고 낙방 당시를 회고했다. 초·중학교 시절의 그는 놀기를 좋아하고 장난이 심했다. 중3 때 담임이었던 임환(任桓·74)씨는 그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몽준이는 반장으로 뽑힐 정도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통솔력도 있었다. 그러나 놀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빼 먹고 야외로 놀러 갔다가 나에게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 전혀 부잣집 아들 티를 내지 않았는데 학교 도서관을 지을 때 시멘트 1만 포대를 지원 받아 아버지가 정주영 회장임을 알게 됐다." 장난꾸러기는 고교 진학 후 모범생으로 바뀌어 갔다.
다른 대통령 후보측에서 "청소년 시절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주장이 흘러 나오고 있으나 본인은 완강히 부인한다. "나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 중에 누가 이상한지 조사해 보자"고 한다. 정 의원은 "고교 3년 때 칠판이 잘 안보여 공안과와 최창수 안과를 찾아가 난시현상이 있다고 해서 치료를 받은 일이 있다"며 "당시 두통이 심해 치료를 받았으나 정신병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중·고교 동기동창인 서강대 손호철(孫浩哲) 교수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정 의원의 정서가 불안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다"며 "고교 시절에는 조용하고 착실한 학생이었으며 복싱 축구 등 운동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운동을 좋아했던 정 의원은 대학시절 승마와 스키 실력이 뛰어나 전국대회에서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정 의원은 ROTC 과정을 마쳤고 졸업 후 곧바로 육군 경리 장교로 군복무를 마쳤다.
이듬해인 1978년 미국으로 건너 가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6개월간 연수한 뒤 당시 국내 최대 기업이던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거의 동시에 MIT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93년에는 존스 홉킨스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땄다.
형수의 소개로 김동조(金東祚) 전 외무장관의 4녀인 김영명(金寧明)씨와 만난 것도 MIT 시절이었다. 김씨는 웨슬리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1년 가까운 연애를 거쳐 결혼했다. 직업 외교관의 딸인 김씨는 17년간 외국에서 생활해 영어에 능통하다. 정 의원은 "아내는 국내에 중·고교 동창이 없어서 선거운동을 도와 줄 사람이 적다"면서 "그만큼 청탁할 사람도 없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손위 동서인 허광수(許光秀)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은 조선일보 방상훈(方相勳) 사장과 사돈이기도 하다.
82년 31세의 나이로 현대중공업 사장에 올라 재계에 본격 데뷔했고 5년 뒤 회장이 됐다. 13대 총선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후 내리 4선, 울산을 아성으로 굳혔다. 그는 당초 12대 총선 때 출마하려 했으나 당시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이 불러서 만류하는 바람에 포기했다. 그는 주로 무소속 의원이어서 제대로 활약할 기회가 없었으나 정쟁에서 자유로워 이미지 관리에는 유리했다. 월드컵 유치와 성공적 개최 등에 기여 했지만 낮은 국회 출석률이 자주 거론되기도 했다. 정 의원은 92년 정주영씨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을 때 국민당 정책위부의장과 부산·경남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당시 부산의 기관장들이 대선 직전에 '초원복집'에 모여 김영삼(金泳三) 후보 지지를 논의하는 현장을 도청시킨 혐의로 기소돼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정 의원은 2남 2녀를 두고 있다. 장남과 장녀는 연세대에, 차녀는 미국에서 고교에 다닌다. 차남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다. 차녀는 86년 정 의원의 박사과정 유학 중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 정 의원은 "2년 뒤 국적을 선택할 때 한국 국적 취득을 권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늘 따라 다니는 '재벌 2세'란 말이 달가울 리는 없다. 그는 "배고픈 적이 있었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면서 "그러나 현대사회의 고생은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 여유와 동시에 남 다른 심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재벌답지 않은 짠돌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검소하다는 평도 있다. 그가 지난달 화엄사 방문 당시 신었던 낡은 구두는 가죽에 틈새가 벌어져 양말이 살짝 보일 정도였다. 외국 방문 때 호텔 방에서 직접 양말을 빠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도 있다. 민주당의 한 여성 의원은 "정 의원이 내 지역구 조기축구회 행사에 참석했는데 밥값도 안 내고 가더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한 의원은 "정 의원이 가까운 의원들에게는 200만∼300만원의 후원금을 낼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측은 "돈을 쓸 만큼은 쓰지만 주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짜다는 평을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돈 씀씀이도 아버지에 이은 2대의 대선 도전에서 눈길을 끌게 돼 있다.
/울산=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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