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 전쟁으로 치닫던 이라크 문제가 16일 이라크의 유엔 무기사찰 무조건 수용 입장 발표로 전기를 맞게 됐다.12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라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 결의안과 향후 미국의 군사작전에 맞춰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날 이라크의 입장 변화로 '제2의 걸프전' 전망은 무기사찰 여부를 지켜봐야 하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4년만의 입장 변화
이라크는 1998년 유엔 무기사찰단이 바그다드에서 철수한 이래 4년 동안 줄곧 무기사찰 재개를 거부해 왔다. 이날 갑작스런 태도 변화는 일단 전쟁의 현실화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권 수호를 명분으로 "대량살상무기는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해 온 이라크에 대해 12일 부시 대통령의 최후 통첩과 같은 경고에 이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던 아랍국들마저 잇따라 유엔 결의를 준수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한때 미군 기지 제공 거부 방침을 밝혔던 사우디 아라비아마저 15일 유엔 결의시 기지 제공 용의가 있음을 비쳐 이라크를 압박했다.
이라크는 이날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시 한번 대량살상무기가 없음을 강조하면서도 "유엔 헌장과 안보리 결의에 명시된 이라크의 주권 및 독립 존중 약속을 중시한다"고 밝혀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숨기지 않았다.
▶냉담한 미·영
백악관은 이라크의 사찰 허용 방침을 "회피 전술"이라고 일축했다.
스콧 맥클레런 백악관 대변인은 "이라크의 어떠한 전술도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축출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의지를 바꿔놓지는 못할 것"이라며 "미국은 후세인이 파기한 16개 결의안을 집행할 수 있도록 여전히 유엔의 행동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도 "후세인의 의도가 지극히 의심스럽다" 며 "4년전 사찰 때와 상황이 달라진 만큼 보다 엄격한 조건이 달린 유엔사찰 결의안을 새로 채택해야 한다" 고 밝혔다.
▶유가 등 경제 안정엔 호재
전쟁 발발시 5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우려됐던 국제 유가는 이라크의 발표 직후 급락세를 보였다.
이날 뉴욕 상품거래소 시간외 거래에서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10월 인도분은 종가(29.67달러)보다 1.42달러(4.8%) 내린 배럴당 28.25달러를 기록했다.
석유 수출국기구(OPEC) 관계자도 당장 증산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으나 이라크의 무기사찰 수용으로 유가가 배럴당 2∼4달러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전문가는 "유가는 내일 정규 거래에서 배럴당 27.5달러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침체를 겪고 있는 미국 증시와 달러 환율에도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망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제 무기사찰 집행과 미국의 대응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라크가 먼저 나서 무기사찰을 수용함으로써 미국이 추진하던 유엔 안보리의 이라크 관련 결의가 일단은 무의미하게 됐다.
이에 따라 안보리는 사찰 수용 촉구 결의 대신 유엔 무기사찰단의 구성과 이라크 재입국에 관한 논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아난 사무총장이 이날 무기사찰단이 "업무를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고 한스 블릭스 무기사찰단장도 2주 이내에 사찰을 재개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이르면 이달 안에 안보리 주도의 무기사찰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안보리 논의 과정에서 사찰단의 이라크 재입국 자체에 의미를 두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차례 사찰 수용 여부와 관계 없이 군사행동에 나서겠다고 한 미국은 변화된 상황에서 사찰단의 구성과 구체적인 사찰 방법, 절차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군사공격에 대한 의지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