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평양에서 열린 북일 정상회담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북한측의 양보로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10월 중 국교정상화 교섭을 재개하는 결과를 낳았다. 북한측은 납치문제, 과거 청산, 핵·미사일, 북한 공작선 추정 괴선박 등 거의 모든 의제에서 일본측의 요구를 수용해 북일 국교정상화의 조기 실현이 북한측에 있어 시급한 당면과제임을 확인시켜 주었다.북한측은 우선 이날 오전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직전에 외무 당국자를 통해 일본이 요구해 온 납치피해자 8건 11명 전원의 생사확인 등 안부정보를 미리 제공해 회담의 물꼬를 텄다. 오전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납치문제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계속 조사와 재발방지를 요구했고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이를 경청했다.
이어 오후 정상회담에서는 김 위원장이 직접 공작차원의 납치를 시인하고 사과한 뒤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공동선언에는 "일본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걸리는 유감스러운 문제에 대해 북한측은 재발방지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표현에 그쳤지만 일본측이 김 위원장의 납치문제에 대한 발언을 별도로 공개함으로써 일본측에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의 명분을 충분히 안겨주었다.
북한 공작선 추정 괴선박 문제에 대해서도 공동선언에 "국제법을 준수해 상호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일본측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공동선언의 첫 머리에 명문화해 북한측의 체면도 어느 정도 세워주었다. 북한측은 '사죄와 배상'을 포기하고 일본으로부터의 경제협력 방식에 합의하고 국제금융기관의 추가 융자를 요청하는 선에서 과거 청산 원칙도 일본측 주장을 수용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실험을 2003년 이후에도 연장한다고 공동선언에 명시한 것도 북일 정상회담 이후의 북미 대화 재개를 기대하며 진전된 자세를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핵 문제에 대해서는 "관련된 모든 국제적 합의를 준수한다"고 밝혀 북미 제네바 핵 합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등을 준수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는 향후 제네바 핵 합의에 명시돼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핵 사찰 수용을 놓고 미국과 협상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한측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폭 양보한 것은 북일 국교정상화를 통해 시급히 경제지원을 받아내고 미국의 강경자세를 누그러뜨려 북미 대화를 복원시키고 싶다는 절박함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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