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로 "한국경제는 이제 끝"이라는 절망감이 팽배하던 1997년말, 이 비극적 상황을 오히려 '축복' 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이유는 간단했다. 중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치유능력을 상실한 한국 경제를 한꺼번에 뜯어고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이들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대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한국병' 중에서도 고질은 부동산 문제였다. 툭하면 투기바람에 휩싸여 폭등하는 땅값과 집값은 서민생존을 위협하고, 경제를 피폐화하며, 사회적 불안을 초래하는 망국병임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국가적 재앙을 감내해서라도 고삐를 잡고자 했던 부동산은 어떻게 되었는가. 외환위기직후 한때 급락하기도 했지만 주택가격은 지난해 외환위기이전 수준으로 돌아갔고, 이제는 1년새 강남아파트 값이 50% 가까이 오르는 집값 폭등 위기를 맞고 있다.
부동산의 폭등세는 1970년대 후반이후 이번이 4번째에 해당한다. 여러 차례 학습효과에 불구하고 왜 부동산 투기와 폭등세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일까. 그 대답은 부동산이 경기를 띄우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건설경기의 미세한 변화도 즉각적으로 내수경기에 영향을 미친다. 고용효과도 지대하다. 물론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버린 일본의 경우에서 보듯이 폐해 또한 막대하지만 정책 당국자들에게는 당장 먹기에는 역시 단 곶감이 먼저다.
이번 역시 예외가 아니다.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했다는 업적에 대한 집착이 1998년말 이후 부동산 규제 장치들을 한꺼번에 무장해제하면서 화를 불렀다. 한달 사이에 몇 천만원씩 뛰는 강남의 집값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큰돈을 버는 것은 역시 부동산" 임을 절감한다. 무덤속에 잠든 악마를 실수로 살려내는 동화처럼 90년초 간신히 잠재웠던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되살려놓은 것은 이 정부의 치명적 실책이다.
3차례의 주택시장 안정대책에도 별 효과가 없자 당황한 정부는 불과 3년전에 용도폐기했던 부동산 규제를 대부분 부활하고, 기준시가 및 재산세 인상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나섰다.
그런데도 시장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정부대책이 임기응변적인 땜질 처방임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갑작스런 기준시가와 재산세 인상 과정에서 드러난 역진적 세금체계와 형평성 시비가 국민적 분노에 더욱 불을 붙이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같은 날 발표된 국세청의 기준시가 인상을 감안하지 않고 과거 기준으로 재산세 인상안을 마련했다가 다음날 번복한 사례는 재산세 산정과정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거시경제나 조세정책에서 차지하는 부동산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정부 주택가격 통계 하나가 없다는 사실은 부동산 정책이 왜 실패를 거듭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배정근 경제부장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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