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북일 정상회담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정치 지도자로서의 위상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김 위원장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다시 한번 전 세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 확고하게 북한을 통치하고 북한의 모든 문제를 전결하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굳혔다.
일본측이 상당한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정상회담에 응한 것 자체가 "북한과의 협상은 김 위원장의 의지가 없이는 아무 것도 진전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이번 회담에서 일본인 납치사건을 시인하고 사과함으로써 국제사회에 '테러와 납치를 저지르는 나라의 최고 지도자'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화되는 부담도 안게 됐다.
또 이번 회담이 미국의 대북 강경자세 속에서 북한측이 유화자세를 보이기 위해 일본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성격이 강해 미국 정부내 대북 강경파들이 "강경한 압박전략이 포용정책보다 효과적"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김 위원장은 국내적으로는 고이즈미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를 받아냈다는 점을 집중 선전할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총리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평양에 들어가 일본측의 요구를 대부분 관철시켜 '결단력 있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얻게 됐다. 그동안 일본 내에서 '외교 음치'라는 지적도 받아왔던 고이즈미 총리는 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국교정상화 교섭을 재개시키는 엄청난 외교적 업적을 쌓아올렸다.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로 한국, 중국에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던 고이즈미 총리는 방북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로 변신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경기회복의 저조 등으로 30∼40%로 떨어졌던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방북을 발표한 이후의 여론조사에서는 50∼60%로 올라간 것으로 나오고 있다.
북일 정상회담의 성공으로 고이즈미 총리는 이달 중으로 예정돼 있는 개각과 제2차 디플레이션 대책 마련 등 중요한 정치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며 '고이즈미 개혁'을 보다 선명히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가에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더 나아가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해 재신임을 얻어 자민당 내 반대세력과 야당의 공세를 꺾고 장기 집권 태세를 갖출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납치문제의 실상이 주는 충격으로 일본 내에서 반북 여론이 다시 강화될 경우 고이즈미 총리에 대해서도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너무 서둔다는 비난이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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