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사과의 바다이다. 전시장 안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사과 수십여 개가 미세한 공기의 흐름에 반응하며 흐르듯 떠 있다. 가장 차가운 재료라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사과는 그러나 따뜻한 느낌을 준다. 시간의 흐름, 혹은 중력의 무게는 사라지고 기묘하게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공간을 지배한다.중견 조각가 도흥록(46)씨가 17일부터 10월 12일까지 서울 청담동 카이스 갤러리에서 여는 11회 개인전이다. 도씨는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의 경지를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작가이다. 서울 포스코센터 앞이나 홍익대 인근 등 많은 곳에 설치된 그의 기하학적인 대형 환경미술 작품들에 눈길을 돌려본 적이 있다면, 이번 작품들은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보게 한다. 4년만에 서울에서 여는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공중에 떠 있는 사과, 혹은 수백 개의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꽃과 가지로 구성된 대형 작업 등 20여 점의 신작을 보여준다.
작가는 "시간개념과 가벼움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스테인리스는 매우 민감하고 여성적인 재료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니켈이나 크롬 등 중금속이 포함돼 있어 아주 무거운 질료이지요. 가공하는 데 최소 10단계의 작업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차갑고 무거운 질료로 환상적이고 유머러스한 공간을 창출해보고 싶었습니다."
다른 사과들과 달리 40㎝ 크기의 대형 사과가 눈길을 끈다. 사과 안에 5인치짜리 모니터가 들어있다. 들여다보면 모니터에서는 쉼없이 메트로놈이 움직인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전시공간의 분위기는 그 움직임을 통해 일순 흔들린다.
관람객들이 사과의 바다를 걷다 보면 또 하나 발견할 것이 있다. 바닥에 설치된 지진계. 몸으로 느낄 수 없는 미세한 움직임을 이 지진계가 기록하고 있다. 정중동(靜中動)의 세계를 작가는 표현하려 한다. 관람객은 스테인리스 사과나 꽃을 만지고 놀며 그 세계에 참여할 수 있다. (02)511-0668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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