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 중이던 1950년 9월17일 북측 종군 기자로 남해 바다에 다다른 소설가 김사량(金史良)이 '우리들은 바다를 보았다'라는 제목의 종군기를 평양으로 보냈다. 그 도입부는 이렇다. "바다가 보인다. 거제도가 보인다. 바로 여기가 남해 바다이다. 진해만을 발 아래로 굽어보며 마산을 지척에 둔 남쪽 하늘 한 끝 푸른 바닷가의 서북산 칠백 고지 위에 지금 나는 우리 군대 동무들과 함께 있다. 바윗돌을 파내고 솔가지를 덮은 은폐호 속이다. 저 멀리 서남쪽으로는 통영 반도의 산줄기가 굼실굼실 내다 보이고, 정면으로 활짝 트인 바다 한가운데로는 거제도가 보인다. 올숭달숭 몰오리떼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그만 섬들은 안개 속을 가물거린다.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바다."문기(文氣)가 그윽한 이 기사는 김사량의 마지막 종군기였다. 두 달 뒤 인민군을 따라 후퇴하던 그는 남한강 상류에서 실종됐다. 36세였다. 김사량의 죽음은 그 해 가을과 겨울, 폭격과 굶주림과 추위가 야기한 수십만의 죽음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그의 짧은 생애 마지막 10년은 1940년대 민족 지성의 섬세한 행로를 보여준다. 생전의 그가 정치적 충심을 건넸던 정권을, 그 정권의 50년 뒤 모양새를 지금의 우리가 결코 지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런 평가를 뒤집는 것은 아니다.
평양 갑부집에서 태어나 도쿄(東京) 제국대학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26세에 단편 '빛 속으로'로 아쿠타가와상(介川賞) 이석(二席)에 입선한 김사량은 1945년 '재지(在支) 조선 출신 학도병 위문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여행하던 중에 화북조선독립동맹의 거점인 태항산채로 탈출해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항일전에 복무했다. 그의 글들은 주저주저하면서도 결국 역사의 편에 서고 싶었던 한 순정한 정신의 고백성사였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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