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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美의 "경제는 경제논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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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美의 "경제는 경제논리로"

입력
2002.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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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오랜만에 최근 미국을 다녀 왔다. 9·11을 전후한 기간이었기 때문에 TV를 켜면 하루 종일 지난해 9·11 사건, 알 카에다, 그리고 이라크와의 전쟁 가능성에 관한 얘기를 피할 수 없었다. 상하원 합동회의가 역사상 처음으로 워싱턴을 벗어나 지난해 테러의 현장이었던 맨하탄에서 열린 것이 이러한 미국의 분위기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한편에서 이와 같이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각 분야에서는 일상 업무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이 또한 지극히 미국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미국 사람들의 관심은 아직은 전쟁보다는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는 프로야구와 새로 시즌이 시작된 미식축구에 쏠리고 있는 것 같다. 경제 분야에 있어서도 근래 보기 드문 대규모 기업부도 사태를 맞이하고도 호들갑을 떨지 않고, 정상적인 법적절차에 의해 부실기업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

미국이 겪고 있는 부실기업 문제의 심각성은 지난 22년간 발생한 10대 부실기업의 절반이 올해 발생했다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6월 말 현재 미국에 간 적이 있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아마 누구나 기억할 K마트를 비롯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도기업인 월드컴, 두 번째인 엔론 등 49개의 대기업이 부도를 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부도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들을 수 없다. 연방정부가 대기업의 부도를 막기 위해 특별히 개입하거나, 은행에 압력을 가하거나, 은행에서 부도유예를 목적으로 특별한 지원을 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없다.

부실기업의 운명은 법원에서 이루어지는 채권자와 채무기업간의 협상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회사를 살리는 것이 효율적인 경우에는 이해당사자들의 협상의 결과 법정관리가 성사되어 기업이 회생될 것이며, 회사를 청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경우에는 이해당사자들의 협상의 결과 아마도 회사가 청산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대부분의 생각이다. 부실기업이 많고, 이들의 규모가 크다 보니 '부실기업 정리' 자체가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 되어 투자은행, 로펌, 컨설팅 회사, 구조조정회사, 회계법인이 벌떼처럼 달려들고 있고, 심지어 관련 분야의 교수들이 휴직계를 내고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들이 받는 돈은 결국 부도난 회사의 자산에서 나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액주주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면 부도상태에 빠진 엔론이 지니고 있는 유동성 자산의 4분의 1 정도는 엔론의 부도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들 부실기업 정리 전문가들이 가져 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정치문제나 사회문제로 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구조조정 전문가들은 대목을 만나 큰돈을 벌게 되어 기쁘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고 있다. 부실기업의 효율적인 처리에 기여한 사람이 이를 통해 창출되는 부의 일부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는 태도이다. 이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입장도 이들에 대한 보수가 다소 과하고, 중복비용이 발생하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대기업이 일단 부실화 하고 나면 이의 효율적인 처리에는 상당한 비용을 들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쪽이다. 반면 부실 원인의 파악과 기업의 부실화 가능성을 사전에 낮추는 제도적 정치의 마련에는 훨씬 더 적극적이다. 부도가 나기 전에 조치를 취하는 것이 효율성 측면에서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회계부정이나 중역의 배임성 행위는 기업이 부도를 냈건 내지 않았건 똑 같이 제재의 대상이 된다.

최근 도입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법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타이코 등 일부 대기업에서는 이미 회계부정이나 배임의 혐의가 있는 중역의 교체와 관련 혐의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미국 자본주의는 여전히 합리성에 대한 믿음에 굳게 뿌리박고 있다. 그리고 그 잠재력은 아직 그 한계를 짐작하기 어렵다.

/남일총 KDI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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