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재직 중 서방 선진 7개국(G-7) 정상 회담에 참석했을 때, 인구 고령화 문제의 심각성과 그 대책에 대해 논의하자고 여러 차례 제의를 했다.그러나 그 때마다 다른 나라 정상들로부터 들은 대답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고 한다. "물론 고령화는 심각한 문제이지만, 다음 세기 초까지는 크게 부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네 달력에는 표시할 일이 없다는 뜻이죠." 투자은행인 블렉스톤 그룹의 회장이자 미국 역대 대통령 자문역을 맡아온 피터 피터슨이 쓴 '노인들의 사회, 그 불안한 미래'라는 책에 소개된 일화다.
정치가들은 노령화 문제가 앞으로 국민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를 잘 알고 있다. 노령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예상된 현상이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정치가들이 국민에게) 그 동안 믿어 의심치 않았던 연금 급여가 실현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평생동안 예금을 한 은행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명확하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다가 현실을 부정하는 단계를 거쳐 분노로 폭발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끔찍한 소식을 전하려 하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고 피터슨 회장은 설명하고 있다.
고령화 문제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00년 11월 현재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5년 전보다 27.7%가 증가해 총 인구의 7.3%에 이르고 있다.
총 인구 증가율 3.2%를 크게 웃도는 이 같은 증가세로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2020년에는 15%를 넘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2026년에는 2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엔은 노령 인구가 7%를 넘어서면 고령화 사회, 20% 이상이면 초 고령 사회라고 분류하고 있다.
고령화는 많은 문제를 가져온다. 우선 생산연령인구의 축소로 저축률이 떨어지고 경제성장이 둔화한다. 연금기금 비중이 늘어 젊은 층의 부담은 더 커지고, 세수는 주는 반면 사회보장 등으로 정부가 써야 할 돈은 더욱 많아져 나라 살림이 어려워진다. 또 가족 문제, 세대간 문화 충돌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일대 변혁이 일어난다.
이런 문제들은 먼 훗날 이야기거나 딴 나라 사정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당면한 문제다. 우리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초 고속이다.
선진국의 경우 고령화에서 고령 사회로 진입하는데 적게는 45년, 많게는 100년 이상 걸린 반면 우리는 20년밖에 소요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제의 '압축 성장'만큼이나 '압축적 고령화'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정치인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대통령 후보들의 정책을 보면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끔찍한 소식'을 차마 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가 없다.
성장, 분배, 재벌, 노동, 시장 규제 등 갖가지 것들로 요란하지만 고령화에 관한 부문은 없다. 선진국 지도자들도 외면하는데, 그 때가서 대처하면 될 것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오고 있다.
더구나 고령화 문제 대응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하고 있는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그에 대한 비전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암담할 뿐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노령화 대책이 대통령 선택의 주요 기준이 되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늙게 마련이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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