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요즘 지방대학들의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03학년도 대입에서 사상 처음 4년제 대학과 전문대를 합친 총 신입생 모집정원이 수험생 수보다 많아지는 '역전현상'이 예상되면서 대학간 치열한 생존경쟁의 서막이 올랐다. 대학의 생존 문제는 서울 등 수도권의 중상위권 대학도 예외는 아니지만, "살아 남는 게 최대 과제"라는 한 지방대 총장의 푸념처럼 지방 중하위권 대학의 사정은 더욱 절박하다. 신입생 모집 난으로 고사위기에 몰리고 있는 지방대의 실상을 심층 진단한다. /편집자주
"아이고 말도 마세요. 고3 학생이 '금덩이'로 보이니, 죽을 지경입니다." 지방 W대의 입학학생처장을 맡고 있는 H교수는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이 많죠"라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탄식부터 했다. "솔직히 대책이 없어요. 군·면·리단위 학교까지 달려가서 전문대 갈 학생들을 불러오는 전략으로 올해 위기를 넘겨야죠. 현실적으로 우리(4년제대)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전문대를 죽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문닫는 대학 나온다'소문 흉흉
H교수는 "몇몇 지방대는 수년 전부터 입학정원을 채우기조차 벅찬 데다 그나마 뽑아놓은 학생조차 재수를 위해 자퇴·휴학하거나 편입하는 바람에 30% 정도가 수도권으로 탈출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따라 학교 재정 중 등록금 의존비율이 60∼80%대에 이르는 일부 사립대의 경우 벌써부터 엄청난 재정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입시에서 5, 6개대가 신입생 모집정원의 50%를 채우지 못했다. 충원율 70%를 밑도는 대학도 30∼40여 곳이나 된다. 194개 4년제대의 미충원 인원은 전년(5,715명)의 3배가 넘는 1만9,971명. 전문대도 지난해 입시에서 전년도의 5배 정도인 2만2,000여명을 채우지 못했다.
문제는 올해 입시부터 가시화하는 '대입정원 역전현상'이 2009학년도 대입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방 대학가에서는 수년 내에 10개 이상의 지방대가 문을 닫게 될 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무성하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대전이 마지노선' 영호남 최악상황
광주·전남지역의 경우 현재 고3 학생 수가 4만7,600여명인데 반해, 이 지역 대학 모집정원은 6만3,000여명으로 1만5,400여명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고3생 중 1만여명이 서울 등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하는 반면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는 학생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정은 더욱 심각해진다. 실제로 서울 등 수도권의 하위권 수험생들조차 '대전권'을 마지노선으로 잡을 정도로 지방대에 대한 기피심리가 팽배해 있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전언이다.
호남지역 D대학의 한 교수는 "지방대의 입학정책은 마치 추수가 끝난 텅 빈 들녘에서 이삭줍기로 아귀다툼을 하는 형국"이라며 "의대·한의학과 등 인기학과의 시너지 효과도 이제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방 하위권대의 경우 입학경쟁률이 겨우 1대 1 전후로 형성되고 있다. 영남지역 K대의 기획처장은 "극심한 학생 모집 난에 시달리고 있는 일부 지방 하위권대의 경우 신임 교수 채용마저 중단했고, 2, 3년 내에는 기존의 교수들마저 떠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정 압박을 덜기 위해 전임교원보다 시간강사나 겸임교수를 늘리는 대학이 많아 연구·교육의 부실화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교수=신입생모집책' 고착화 상황
학문을 연구하고 학생을 가르쳐야 할 교수들이 '신입생 모집책'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 I대의 L교무처장은 "올 1학기 때 전국 400여개 고교를 돌아다니며 홍보활동을 폈다"면서 "10월에는 교수와 교직원 2명이 한 조를 이뤄 5∼7개의 고교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2009학년까지 미달 계속될 듯
4년제 대학과 전문대를 합친 총 신입생 모집정원에 비해 수험생 수가 모자라는 '대입정원 역전현상'은 앞으로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2003학년도 대입에서 194개 4년제대와 158개 전문대의 총 모집정원(67만여명)이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가깝게는 현재 고1, 중3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2005, 2006학년도 대입에서 가장 심하고 이 같은 추세는 2009학년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이어 현 초등 5년생이 대학에 가는 2010학년도부터 수험생(재학생 기준) 수가 갑자기 급증해 역전현상이 사라졌다가 2015학년도 대입부터 다시 역전현상이 나타나 이후에는 계속 악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입정원 역전현상은 기본적으로 출산율 하락에 따른 고3 학생수 감소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0만9,800여명인 고3 학생수는 내년에 1만5,000여명 늘어났다가 2004년에 60만9,000여명으로 감소한 뒤 2008년까지 60만∼63만명 대를 유지한다.
올해 고3 학생 수가 급감한 것은 1983년 2.08%이던 출산율이 84년 1.76%로 급락했기 때문. 2009년 고3 학생이 70만3,000여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7만여명 늘어나는 것도 1991년 출산율이 전년도 1.59% 에서 갑자기 1.74%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입정원 역전현상에는 재수생 수의 급격한 감소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다. 대성학원 이영덕(李永德) 평가실장은 "최근 재수생 수가 매년 수 만명씩 자연감소 하고 있는 데다, 대입제도가 획기적으로 바뀌는 2005학년도 대입에서는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김동국기자 dkkim@hk.co.kr
■ 지방대 학생유치전 百態
'살아 남으려면 신입생 정원을 채워라.'
지방대의 치열한 생존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대다수 대학이 이미 출혈(出血)도 불사하는 총력전에 돌입했다. '대입정원 역전시대' 초기부터 기선을 잃게 되면 살아 남기 어렵다는 비장한 각오가 배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출혈경쟁이 재정악화를 가중시켜 대학경쟁력을 떨어뜨려 신입생 유치를 더 어렵게 하는 악순환의 시작이라는 지적도 높다.
▶저인망식 신입생
몰아오기 인근 고교나 학원으로 달려가 홍보하는 것은 이미 '한가한 것'에 속한다. 일부 지방대는 교수와 직원 등을 총동원, 읍·면·리의 학교까지 이 잡듯 훑고 있다. 전문대로 빠져 나가는 학생마저 놓치지 않겠다는 '저인망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
경북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시골에 있는 학교는 물론이고 심지어 학생 집까지 찾아가 입학을 권유하는 실정"이라며 "솔직히 전쟁터에 나선 기분"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총장이 신입생 을 유치하기 위해 야전사령관으로 나서는 대학도 적지 않다. 서원대는 총장과 교수, 학생 등으로 홍보팀을 구성하고 도내의 11개 시·군 학교를 도는 마라톤 홍보전에 나섰다.
▶장학금과 기숙사는 기본, 해외연수는 옵션
학생을 '유인'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는 장학금 혜택과 기숙사 제공. 아주대는 신입생의 30%에게 장학금 지급을 내세우고 있다. '외지 학생 100% 기숙사 수용'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울산대는 1,350명을 수용하는 현재 기숙사 외에 500명이 생활할 수 있는 1개 동을 더 짓고 있다. 충남대는 올 초 54억여원을 들여 도서실과 체력단련실을 갖춘 기숙사를 준공했다. 어학연수 등의 옵션이 붙기도 한다. 목원대는 중국의 한 결연대학과 신입생을 2년간 교환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고, 대전대는 지난 1월 해외 자매대학에 학생 200여명을 연수 보낸 사실을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해외에서 활로를
해외 유학생 유치전도 가열되고 있다. 신라대와 부경대는 올 입시에서 외국인 특별전형 정원을 크게 늘렸고 대구대는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외국인 전용기숙사를 신축 중이다. 우석대, 대구대, 조선대 등 20여개 대는 중국 인도 베트남 등지에서 해외유학박람회 및 현지고교 방문 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인제대 이동석(李東奭) 교무처장은 "지방대가 앞다퉈 해외유학생 유치전에 뛰어들고 있지만 외국인 학생도 의대 등 인기학과를 선호해 충원에 큰 도움이 안되고 학비감면, 장학금과 기숙사 제공 등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