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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24)대추나무 시집보내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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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24)대추나무 시집보내는 까닭

입력
2002.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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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물난리로 인해 참으로 어려웠던 지난 여름이었지만 시리도록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 청명해진 가을 하늘을 보니 어느새 지난 상처들도 하나 둘 아물어 가는가 싶습니다.매년 이 즈음이면 어릴 때 친구네 집에서 보았던 대추나무 한 그루가 생각납니다. 제사에 쓰려고 또는 음식에 넣으려고 사다 놓은 쪼글쪼글 마른 대추만을 알고 있던 저는 그 친구 집에서 처음 따 먹어본, 연두색에서 갈색으로 막 익어가는 싱싱한 대추 몇 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풋풋한 느낌으로 아삭거리던 그 맛….

옛 사람들은 가을에 풍성하게 대추를 수확하기 위해서 정월대보름과 오월 단오에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를 합니다. 대추나무 줄기가 하나로 올라오다 둘로 갈라진 틈새에 돌을 끼워주는 것입니다. 마을의 아낙들은 저마다 흩어져 큰 돌을 주워오고 마을에서는 이 가운데 가장 적절한 돌을 골라 빠지지 않고 오히려 상처가 날 정도로 나무에 꽉 끼웁니다. 이렇게 하면 대추가 많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대추나무를 시집 보내며 함께 모여 음식과 여흥과 마음을 나눕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시집을 보내 자식을 뜻하는 열매, 대추가 많이 열기를 바라는 단순한 마음일 듯도 싶고, 또 나무 가지에 돌 끼워진 모습 등을 상상하면 다소 외설스러운 마을 사람들의 장난기 섞인 해학일 수도 있겠지만 이 풍속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줄기 중간에 돌을 끼우는 것은 양분의 이동을 제한하기 위해서 입니다. 대추나무 역시 잎에서 광합성작용을 해 당분을 만드는데 이것은 대추가 열매를 많이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잎에서 만들어진 당분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막고, 또 열매보다는 키가 크고 무성하게 하는데 더 큰 기여를 하는 질소가 뿌리에서 만들어져 위로 올라가는 것은 줄임으로써 대추나무는 열매 맺기에 더 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실을 재배하는 책을 보면 환상박피라고 하여 줄기의 중간에 띠를 만들어 벗겨 내어 결실이 많도록 하는 방법을 쓰는데 이것이 바로 대추나무 시집보내기와 같은 원리입니다.

대추나무는 또 흔히 양반나무라고 부릅니다. 가지에 싹이 트는 것은 몹시 늦은 봄이나 초여름이죠. 성급한 다른 모든 나무들이 잎을 내고 꽃을 피워내고 있는 동안에도 마치 죽어 있는 듯 침묵하며 애를 태우다가는 어느 날 문득 초록빛 새순이 터져 나오니 이렇게 때가 될 때까지 늑장을 부린다 해서 붙은 별명입니다.

이처럼 양반님네로 불리우는 나무를 가지고 다소 점잖치 못한 모습으로 시집까지 보내고 놀리면서도 풍년을 바라며 함께 즐기는 민초들의 모습은 자못 통쾌하고 재미나며 그 지혜로움에 경탄도 하게 됩니다.

부디 올 추석은 시집가서 가지에 주렁주렁 대추를 매달고 익어가는 대추나무처럼 물질도 마음도 풍성하시길 바랍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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