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금년 초부터 시작된 아파트 투기억제를 위한 목적으로 조세정책을 제시하였다. 과연 정부가 제시한 조세정책이 실제로 투기를 억제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정책들은 과거에도 부동산 투기가 발생할 때마다 상습적으로 내놓은 것이지만 부동산 투기억제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조세정책은 기본적으로 세수확보가 우선 과제이고 소득재분배와 경기정책을 위하여 제한된 범위에서 사용될 수 있지만 투기억제 정책수단으로 적합치 않다.부동산 투기가 활발하였던 1980년대 말 상황을 되돌아보자. 1986년부터 국제수지 흑자가 지속되자 일본에서 도입된 '재테크'라는 말과 함께 88올림픽 이후부터 부동산 투기 붐이 일었다. 이때 정부는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하여 '토지 공개념'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를 위하여 당시 정부는 조세정책을 그 수단으로 제시하였고, 이 정책의 주요 내용은 토지보유 과세 강화라는 명분으로 토지종합과세, 토지초과이득세 그리고 택지상한과세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세금의 도입을 위한 국무회의 의결과정에서 제시된 세목들이 위헌이라는 이의 제기도 있었고, 투기억제의 실효성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조세정책부서는 명쾌한 해명 없이 입법을 강행하였고. 시행 이후 토지초과이득세와 택지상한과세는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 불일치 판결을 받게 되었다. 결국 조세정책이 투기억제의 실효성과 합헌성과는 관계없이 상황대처를 위하여 일시적으로 이용되었을 뿐이었다.
최근 발생한 부동산 투기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작년 미국의 9·11테러 사태 이후 성급한 경제정책의 전환이 오늘의 투기를 유발한 것이다. 정부 경제정책은 9·11사태를 빌미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은 구조조정을 뒤로 미루고 경기부양을 위한 팽창정책으로 급속한 전환을 하였다. 그 후 경제정책 당국은 경제성장률을 높여 경제정책이 성공하였다고 과시하기 위해 현재까지 금융과 재정의 팽창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풍부한 유동성에 금리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저 수준을 유지하였고, 소비증대를 통한 성장률 제고를 위하여 노상에서까지 신용카드를 남발하여 신용불량자를 양산하였다. 또한 조세원리에도 맞지 않는 가격 메카니즘을 통한 소비조장을 위하여 특소세를 인하하였다. 그 밖에 부동산 경기 진작이라는 명분으로 투기억제를 위하여 마련되었던 제도들을 폐지하여 정책당국 스스로가 투기를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경제 정책들의 결과로 현재와 같은 투기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동일 부서가 투기의 원인을 제공하는 정책을 지속하면서 동시에 투기를 방지하는 정책을 제시하는 모순된 상황에서는 단편적인 조세정책만으로 투기억제가 성공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
현재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IMF사태를 체험하고도 경제정책 운영을 IMF사태 이전과 같은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 그간의 경제정책은 일시적인 거시지표의 미화를 위하여 중·장기적인 안정성장 기반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는 부동산 투기로 인한 거품현상이 한나라 경제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의 과거에서 또한 외국의 사례를 통해 잘 인식하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급작스러운 엔화의 평가절상으로 수출업체의 수익성이 문제가 되자 이를 보전하기 위하여 저금리정책을 지속하였다. 저금리 정책은 '재테크'라는 신조어를 탄생하게 하면서 주식과 부동산에 투기열풍을 초래하였다. 이 때 일본정부는 일본경제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다고 하면서 90년대에 대한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1990년 주식시장의 거품이 제거되기 시작하고, 91년 부동산 시장에서마저 거품이 빠지자 일본경제는 지난 10년간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투기로 인한 거품현상이 국민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투기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는 너무나도 안이하다. 특히 조세정책과 함께 구체적인 내용 없이 발표된 신도시 건설 계획은 토지 투기마저 부추길 것이다.
경제정책 당국이 정직하게 경제의 장래를 위하여 부동산 투기를 실질적으로 억제하려면 경제성장률에 집착하여 일시적인 상황논리에 연연하지 말고 부동산 투기에 원인을 제공한 경제정책 자체를 수정하여야 할 것이다.
김종인 前 청와대 경제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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