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의 생일을 며칠 넘긴 8월 어느날, 나는 내 소설 '회전목마'가 한국일보 1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정말 당선이라니…. 순간적으로 나는 실감하기 힘들 정도의 기쁨에 휩싸였다. 상금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누구에게나 일생에 전기가 되는 잊을 수 없는 영광의 순간이 있는 법이다.젊은 날 나의 문학열병은 아마도 젊은이들의 일상적인 것이었으리라. 당시 학교수업보다는 소위 '글쓰기'에 더 열심이었다. 남모르게 숨어서 서툰 작품을 만들어 신문사나 잡지사로 열심히 보내고 떨어지고 보내고 떨어지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청준 선배, 박태순 선배와 최종심에서 겨뤄서 미끄러지곤 하였다.
당시 공과대학생이었던 나는 한국일보에서 장편소설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겁도 없이' 휴학을 했다. 그리고 청주의 이모 댁으로 내려가 몇 달간 원고지를 놓고 씨름하였다. '회전목마'란 제목부터 일찍부터 정해 놓았다. 마감 직전에는 친구들까지 불러서 원고 청서 도움을 받는 등 법석을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원고를 제출하고는 잊고 있었다. 설마 당선이야 되겠는가?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항상 남는 것은 불만뿐이었으니까. 9월부터 복학을 하고 전공인 건축 공부나 할 생각이었다.
어찌 보면 나는 남들처럼 정상적인 창작 수업을 거치거나, 쓰리고 눈물나는 습작기를 거친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공과대학생이 취미 삼아 쓰던 소설이었다. 꼭 문단이라는 고개에 올라설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당선 통보를 받은 다음날 아침 신문사에 나갔더니 남욱 문화부장과 이영희 차장, 또 기자들이 기겁을 하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광복절 전날이었는데, 약관의 해방동이 8월생이 당선자로 나타났으니 말이다. 당시 사진을 보면 나는 어린 학생 티를 그대로 담고 있다. 남 부장은 신문에 심사평과 소설에 대한 소개를 아주 독특하게 해주었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그때 그 전화로 나는 한동안 작가생활을 했고, 그 이후 문학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는데, 어쩌면 나는 문학의 길을 회피해 왔던 것일까? 나는 지금도 문학에의 향수를 갖고 있다. 그리고 가끔 다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문학은 그때와는 달리 더 멀리 있는 것 같다.
이건영 한국건설산업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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