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에서 불이 활활 타고 무언가 치밀어 오르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나는 것을 참으려고 하면 가슴에 덩어리가 콱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다."시도 때도 없이 폭발하는 화(火)는 수명을 짧게 한다. 화를 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옛말이다. 최근 연구 결과, 분노를 터뜨리면 '불에 풀무질하듯'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지고 오래간다고 한다. 특히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심장질환이나 각종 암 등이 발생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화를 내면 대뇌 시상하부의 신경세포들이 흥분하고, 콩팥 위에 있는 부신이 아드레날린과 코티졸과 같은 분노 호르몬(스트레스 호르몬)을 방출한다. 이 때 심장 박동은 평소보다 훨씬 빨라지고 손바닥에 땀이 나며 호흡이 가빠진다. 또 심장에서 근육으로 지나치게 혈액을 많이 보내다 보니 동맥에 무리가 와서 손상된다. 심할 경우 동맥에 상처가 생기고, 동맥경화도 나타나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또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강한 교감신경계 반응을 일으킨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돼 심장혈관 질환, 소화장애, 콜레스테롤 증가, 위염, 면역기능 저하 등을 겪게 된다. 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화 잘 내면 심장발작 위험 2배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팀은 적대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온화한 사람보다 종양세포를 파괴하는 면역세포의 힘이 약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가장 위험한 경우는 화가 날 일이 아닌데도 쉽게 화가 치미는 적대적 성격의 소유자다.
지난해 '미국역학저널'에 발표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평소 화를 잘 내는 사람은 태평한 사람에 비해 심장발작을 일으킬 위험이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 결과 화를 잘 내는 여성이 차분한 여성에 비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거나 과체중인 경우가 4배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남녀 5,700명(15∼64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회사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을 때 직접 항의하거나 일단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나중에 속마음을 털어놓는 등 공개적으로 대응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에게 화풀이해서 두통을 얻거나 속상해 하는 사람들에 비해 고혈압 환자가 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화 잘 내는 사람 회사 효율성 떨어뜨려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과 우종민 교수는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매사에 부정적이고 공격적이며 다른 사람들을 불신하며 자신을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화를 잘 내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라고 설명했다. 습관적으로 화를 잘 내다가 보니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고 동맥경화나 심장병이 생겨서 일찍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분노의 악순환'이 지속되면, 회사의 조직 분위기가 나빠지고, 불만이 생기고 근무의욕이 저하돼 회사마저도 분노가 만든 '만성질환'에 걸리게 된다. 직원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이 중요한 회사일수록 이런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렇게 되면 피터 드러커가 말한 '지식 노동자'들의 효율성은 크게 떨어진다.
▶화를 어떻게 다스릴까
분노를 다스리는 고전적인 방법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1에서 10까지 센 다음 산책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합리적인 생각을 다시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최근 새로 개발된 방법은 분노를 가슴에서 머리로, 즉 감정 수준에서 지능 수준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듀크대 메디컬센터 행동의학연구소 소장 레드퍼드 윌리엄스 박사는 "화가 날 때 스스로 4가지 질문을 던지라"고 권한다. 즉 정말 중요한 일인가 화를 내는 것이 적절한가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대응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등의 생각을 하다 보면 분노가 합리적인 사고로 전환돼 화가 서서히 가라앉게 된다는 것이다.
경희대 한방병원 신경정신과 김종우 교수는 "분노를 느끼면 상대방과 얘기를 하고, 화가 폭발할 때에는 곧바로 대화하지 말고, 억울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자신의 입장을 여유를 가지고 정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 당신은 어느 정도 화를 내는가?
하버드대의대는 분노와 심장발작에 관한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화를 내는 수준을 측정했다. 연구팀은 화를 내는 정도가 심할수록 심장발작 위험이 커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질문 1∼15에서 '그렇다'고 생각될 때 1점씩을, 16번 질문은 '아니다'라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1점을 준다.
1. 욕을 하고 싶을 때가 가끔 있다.
2. 물건을 때려 부수고 싶은 때가 종종 있다.
3. 왜 신경질이 나고 기분이 나빴는지 모를 때가 자주 있다.
4. 누군가와 주먹다짐을 하고 싶을 때가 가끔 있다.
5. 남에게 쉽게 짜증을 낸다.
6. 성미가 급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7. 줄을 서고 있는데 누가 내 앞쪽에서 새치기를 하려고 한다면 가만두지 않는다.
8. 무례한 사람을 거칠게 대한 적이 가끔 있다.
9. 신경질을 내고 짜증을 부려 남들에게 미안한 경우가 자주 있다.
10. 누가 빨리 하라고 채근을 하면 화가 난다.
11. 난 고집이 세다
12. 너무 화가 나고 흥분해서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를 때가 종종 있다.
13. 술을 마시면서 화가 나 가구나 접시를 박살낸 적이 있다.
14. 어느 누군가에게 너무 화가 나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 든 일이 있다.
15. 너무 화가 나 몸싸움을 하다 누군가를 다치게 한 일이 있다.
16. 자제력을 잃는 경우가 거의 없다.
평가
0∼1점 (온화한 성격) 분노에 의한 심장발작이 발생할 위험이 낮음.
2∼4점 (보통 성격) 분노에 의한 심장발작 위험이 온화한 사람에 비해 2.7배 높음.
5∼16점 (다혈질 성격) 분노에 의한 심장발작 위험이 온화한 사람에 비해 3.5배 높음.
● 화병치료 어떻게 하나
한국인의 정서와 한국문화의 특수성 때문에 생긴다는 '화병(火病)'. 우리나라 인구 중 4.2%가 화병을 겪으며 특히 중년 이후 여성과 사회 경제적 및 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에서 발생 빈도가 높게 나타난다.
남편과 시부모 관계 등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 가난, 좌절 등에 의한 속상함, 억울함, 분함, 화남, 증오 등과 함께 우울, 불안, 불면, 소화장애, 두통 등의 증세가 동반된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민성길 교수는 "화병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분노"라며 "속에서 열이 나고 열이 나고 목에 무언가 뭉친 듯한 이물감 등은 화병의 두드러진 증상"이라고 말했다.
몇몇 정신과 의사들은 화병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恨)을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감정을 가슴에 쌓아 놓기 보다는 말로 이를 표현하라는 것이다. 성급한 화풀이는 상대방에게 또 다른 상처를 만들고 한과 화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민성길 교수는 "가능하다면 이루지 못한 소원을 현실에서 풀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며 "굿판을 벌이든지, 춤과 노래로 풀든지, 예술로 승화시키든지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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