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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43)10대 의원시절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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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영원한 청년 이만섭(43)10대 의원시절 ⑥

입력
2002.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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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로 헌정은 중단되고 정치는 사라졌다. 군부는 정치 활동을 금지한 가운데 국민적 합의로 굳어져 있던 대통령 직선제를 내던졌다. 서울의 봄은 제대로 꽃도 피워 보지 못한 채 된서리를 맞았다.8월16일 최규하(崔圭夏) 대통령이 하야했다. 그리고 27일에는 전두환(全斗煥) 국보위 위원장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11대 대통령에 뽑혔다.

20여일이 지난 9월20일 5·17 이후 처음으로 국회가 열렸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정문 앞에는 탱크가 버티고 서 있었다. 의사당은 그대로였다. 부정 축재니 뭐니 해서 구속된 의원들이 적지 않아 여기저기 빈 자리가 생긴 것만 달랐다.

국회가 열렸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틀 뒤인 22일 남덕우(南悳祐) 국무총리와 이한기(李漢基) 감사원장의 임명동의안을 처리한 뒤 국회는 휴회했다. 그것이 사실상 10대 국회의 마지막이었다.

10월22일에는 국민투표에 의해 제5공화국 헌법이 확정됐다. 국회는 해산됐다. 27일에는 11대 국회가 개원할 때까지 국회 기능을 대행할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발족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국보위는 11월12일 10대 국회의원 등 835명을 정치 규제대상자로 발표했다. 나는 재심을 청구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규제를 받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나는 직접 광화문의 국회 제3별관을 찾아가 소명자료를 냈다. 그리고 얼마 뒤 정치규제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당시 재심 청구자는 모두 569명이었고 나를 포함한 268명의 재심이 받아 들여졌다. 규제에서 풀리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도 억울한 사람이 많았다. 정치적 과오가 없는데도 앞으로 선거에서 여당을 위협할 만한 사람들은 상당수가 규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했다. 공화당이 해체됐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공화당 이념을 계승할 새로운 당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공화당 시절 가깝게 지냈던 정간용(鄭幹鎔) 김한선(金翰善) 김유상(金裕祥) 의원 등과 자주 만나 공감대를 만들어 갔다. 다른 한편에서는 김종철(金鍾哲) 양찬우(楊燦宇) 김용호(金龍鎬) 의원 등이 역시 공화당 재건을 논의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들과도 만났다. 그리고는 마침내 한 길을 걷기로 했다.

12월3일 남산 외교구락부에서 구 공화당 출신 의원들이 모여 창당발기준비위원회를 열었다. '승계와 단절'을 기본 정신으로 한 창당발기 선언문은 내가 기초하고 낭독했다. 다음해인 1981년 1월23일 김종철씨를 총재로 한 한국국민당(국민당)이 창당됐고 나는 정책위의장과 조직강화특별위원장을 맡았다.

한편 신군부는 일사천리로 창당 작업을 진행해 1981년 1월15일 민주정의당(민정당)을 창당했다. 또 유치송(柳致松)씨를 총재로 한 민주한국당(민한당)이 이틀 뒤인 1월17일 출범했다.

3·25 총선에서 국민당은 92개 지역구 가운데 75개 지역에 후보를 냈고, 이 가운데 18명이 당선됐다. 나도 대구 중·서구에 나서서 1등으로 당선됐다. 민정당은 90석을, 민한당은 57석을 얻었다. 전국구를 포함, 25명의 의원을 안은 국민당은 비록 제2 야당에 그쳤지만 일단은 성공적인 출발을 한 셈이었다.

당시 국민당과 민한당을 두고서 민정당의 제1중대니 제2중대니 하는 말이 있었다. 언론에서는 들러리 야당, 어용 야당이라고도 했다.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그러한 비판을 달게 받아 들인다. 그 무렵 모든 국가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그 힘을 이용, 야당의 창당 작업에 관여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야당의 간판급 인물과 주요 창당 실무자에게는 적지않은 영향력을 미쳤다. 이런 정황은 어렵잖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런 현실을 받아 들이지 않고서는 정치를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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