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주변 병력 증강 위치나 이미 감지된 미 정보 요원들의 이라크 내 작전 행태로 볼 때 '제2의 걸프전'은 대규모 공습에 이어 이라크 남부와 북부를 통한 지상군 투입으로 시작할 것이 유력하다.
서방 언론들은 대체로 내년 초를 개전 시기로 보고 있지만 이르면 11월 초도 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동시다발 공습과 진격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공습을 이끌 주력 항모는 아프가니스탄 군사 작전을 위해 인도양에 대기 중인 조지 워싱턴호다. 아프간전에 비춰볼 때 개전 직전 3∼4개 정도의 항모와 다수의 군함들이 걸프만 인근으로 이동해 공격에 합류할 수 있다.
주변 아랍국은 아직까지 이라크전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지만 일부 국가들에 있는 미 공군기지 역시 공습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카타르는 개전을 지휘할 미 중부군 사령부가 옮겨가 사실상 이라크 전 지휘본부가 될 전망이다. 쿠웨이트 미군 기지에는 현재 약 1만 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으며 이르면 2주 안에 영국군 3만 명이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 비행 정찰과 방공망 무력화를 위해 상당수의 미국과 영국 전투기가 배치된 터키의 인시르리크 기지에서도 이라크 공습을 위한 전투기 발진이 가능하다. 이달 초 바그다드 남서쪽 이라크 미사일·레이더 기지에 대한 미·영 연합군의 대대적인 공습은 개전 초 이라크 방공망을 무력화하기 위한 전주라는 분석이다.
연합군 전투기들은 또 이라크 남부 바스라 주변에 배치된 중국제 실크웜 지대지 미사일 격납고도 집중 파괴할 것으로 보인다. 방공망 무력화 이후 연합군은 델타포스(미국), SAS(영국) 등 특수부대를 앞세워 바스라의 비행장 두 곳과 항만을 장악한다. 이 곳은 바그다드 진격을 위한 주력 병참기지가 될 전망이다. 이후 쿠웨이트와 카타르, 인근 항모에서 이동한 수만 명의 연합군이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계곡을 따라 바그다드로 이동하기는 어렵지 않다.
남은 것은 사담 후세인 정권 전복을 위해 바그다드에 도착한 연합군들이 이라크군과 벌이는 시가전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연합군은 난관에 부닥칠 수 있다. 쌍방의 희생을 늘려 국제 사회의 종전 여론을 불러 일으키려는 후세인이 단기간에 승부가 나지 않는 대규모 유혈전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스라엘에 대한 이라크의 미사일 공격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걸프 지역 병력 이동 준비
어쨌든 부시의 유엔 연설 이후 미국과 영국군의 이라크 주변 병력 이동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영국군의 핵심 예비역 장병들은 물론 의무·통신 등 특수병과원들은 2∼3주 후에 이라크 작전 동원을 예상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13일 국방부 소식통을 인용해 영국이 이라크전 참전과 관련한 의회의 결정이 내려지는 24일 이후 경기갑 2개 여단을 포함한 3만 병력을 쿠웨이트로 파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이라크 남부 공격에 나설 연합군 5개 부대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미 중앙정보부(CIA) 요원들과 미군 특수부대가 이미 은밀하게 작전 중인 것으로 알려진 북부 쿠르드족과 남동부 시아파 거주 지역의 군사 작전도 속도를 더할 전망이다. 걸프전 종전과 함께 이들의 보호를 위해 유엔 결의에 따라 북위 33도 이남, 36도 이북으로 설정된 이라크 비행금지구역의 정찰 비행은 최근 대폭 강화됐다. 개전과 동시에 이 지역에는 미군 공수부대와 영국의 16강습여단, 해병 원정부대가 양동작전을 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군은 또 개전 후 이라크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비해 최근 요르단에 군사 훈련 명목으로 2,500명의 병력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개전까지의 일정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 이라크 군사공격을 감행하기까지는 몇 가지 정치, 외교적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유엔과 주요 동맹국들의 지지, 국내적으로는 의회의 승인을 얻는 것이다. 우선 유엔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로운 대 이라크 결의안을 기다려야 한다. 현재로서는 새 결의안이 이 달 하순 이전까지는 채택될 것으로 보이지 않다는 것이 유엔 소식통들의 판단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13일 영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등 다른 안보리 회원국 외무장관과 만날 예정이지만 이 국가들이 당장 결의안 작성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AFP통신은 안보리 외교관을 인용, "각국 장관들이 세부사항에 들어가지 않은 채 서로를 타진할 것"이라면서 "장관들이 각국으로 되돌아가 유엔 외교관들에게 지시를 하는 다음주나, 23일부터 시작되는 그 다음주에야 작업이 실제로 착수될 것"이라고 전했다. 새 결의안에는 이라크가 유엔의 사찰을 받아야 하는 최종 시한이 포함되지만 그 시한은 매우 짧을 것이라고 미국 관리들은 말했다. 미국은 또 동맹국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순방외교도 펼친다. 1∼2주내에 러시아 등 주요 동맹국에 대표단을 보내 이라크 군사 공격에 관해 설명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 정부는 또 의회의 현 회기가 10월 4일에 끝나기 때문에 그 전에 의회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연방 상·하원 중간선거가 11월 5일 실시되는데 새 의회가 구성될 때까지 기다리려면 군사행동이 지연되고 추진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이런 수순을 모두 밟을지는 확실치 않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는 유엔의 동의를 구했지만, 1999년 코소보전 때 빌 클린턴 대통령은 유엔의 승인 없이 공격을 감행했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이라크에 최후통첩/美 5개항 요구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2일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이라크가 미국의 선제 공격을 피하기 위한 '최후 통첩'으로 5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것들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체제 유지를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이 없어 전쟁에 필요한 명분을 축적하고, '일방주의'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1 대량살상무기(WMD) 및 재료 즉각 공개, 해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의 제1명분은 "1998년 이후 유엔의 무기사찰을 거부하고 있는 이라크가 개발 중인 WMD가 세계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 유엔무기사찰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이 잇따라 "이라크가 WMD를 개발·보유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발표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걸프전 이후 채택된 유엔 결의안을 무시하고 있다"는 내용의 자료까지 배포하면서 유엔과 각국 정상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2 테러리즘에 대한 지원 중단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미국 및 우방들을 겨냥한 각종 테러 활동과 테러 조직을 지원,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라크가 테러 수출국이기 때문에 전세계의 테러 근절을 위해 이라크를 공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미국의 논리이다.
3 소수 민족과 민간인에 대한 탄압 중지
미국은 소수 수니파가 주축이 된 이라크 정권의 소수 민족과 다수 시아파에 대한 탄압상을 공개, 후세인 대통령의 잔인성을 강조했다. 또 분리 독립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북부 쿠르드족과 남부 시아파 반군 및 바그다드 주변의 수니파 이슬람 단체 등 3대 '반 후세인 세력'을 지원, 봉기를 유도한 뒤 본격적인 군사 행동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4 걸프전 피해 보상 및 전쟁실종자·사망자 유해 반환
걸프전 직후 유엔은 이라크에게 63개국 5만 7,000여명의 피해자에 대해 1억 4,200만 달러를, 세계의 피해기업들에 대해서는 780억 달러를 보상하라고 책정했지만 거의 지불되지 못했다. 미국은 또 미군 중 유일한 실종자인 마이클 스콧 스파이커 소령을 이라크가 생포했거나 유해를 회수하고도 관련 정보를 감추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5 경제 제재 조치의 준수.
유엔은 걸프전 이후 의약품, 생필품 등 인도적 물자 구입 용도를 제외하고는 이라크에 석유 금수 조치를 내렸다. 미국은 하지만 후세인이 석유 밀수를 통해 연간 30억 달러를 챙기고 유엔이 허가한 원유 수출액에 대해서도 배럴당 70센트의 뇌물을 빼돌려 WMD 개발과 정권 유지 자금으로 빼돌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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