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권 분량의 종이를 준비하라!" 1434년 7월 세종대왕은 종이 만드는 관청에 이런 영을 내렸다. 중국 송(宋)의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BC 5세기 주 시대부터 AD 10세기 후주에 이르는 1,362년의 역사를 집대성한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주석을 달아 편찬, 전국에 배포하기 위해서였다.세종은 "노인들도 쉽게 볼 수 있게 큰 활자를 주조하라"고 명하고, 주석서를 친히 교정하기도 했다. 이 일화에서 드러났듯이 '자치통감'은 중국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뜻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최고의 고전으로꼽혔다.
'자치통감'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권중달 중앙대 교수가 최근 한(漢)나라편 30권을 3권으로 번역, 출간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주관하는 '자치통감' 역주사업을 떠맡은 권 교수는 2005년까지 원전 294권을 완역한다는 계획이다. 2000년 9월 처음 펴낸 전국시대와 진(秦)의 흥망사 8권을 포함하면 38권을 번역했으니 이제 작은 산 하나를 넘은 셈이다.
권 교수는 "'자치통감'은 재미와 무게를 두루 갖췄고 왕조의 분열과 통일, 새로운 사상의 등장, 재통일과 변화 과정 등 파란만장한 역사는 물론, 중국의 철학과 문학, 다양한 인간의 모습과 생활상 등이 녹아있어 오늘날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데도 큰 보탬이 된다"고 말한다.
한나라편 3권은 각각 유방의 천하통일과 왕조 체제 확립, 무제의 독재와 나약한 후계자들, 왕망의 신 왕조와 한 왕주 부흥 움직임을 다루고 있다. 번역본은 일반 독자들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상세한 주석과 해설을 달고 관련 유적·유물 사진과 지도, 도표를 실었다. 또 각 권에 50∼100여개의 미주(微註)를 달아 당시 제도와 풍습 등도 풀어 보여준다.
권 교수는 개설서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힘, 자치통감에 있다'도 함께 펴냈다. 보수파 사마광과 개혁파 왕안석의 갈등을 비롯해 '자치통감'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과 우리나라에 도입돼 활용된 내력, 오늘날 이 책이 갖는 의미 등을 소개해 충실한 길잡이 노릇을 한다. 푸른역사 발행·각권 2만3,000∼2만4,000원.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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