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14일 영국 런던 교외의 버킹엄셔에서 철학자 칼 포퍼가 작고했다. 그는 빈에서 오스트리아인으로 태어났고, 1946년 이래 영국인이었다. 1902년 생이므로 아흔두 해의 생애를 살았다.위대한 정신의 내면은 깊은 연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 안에 칸막이를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포퍼의 글쓰기 영역을 굳이 나누자면 크게 과학철학(인식론)과 사회철학(실천론)으로 대별할 수 있다. 전자가 그의 첫 저서이자 유일한 독일어 저서인 '탐구의 논리'에서 큰 틀이 완성된 뒤 '추측과 논박', '객관적 지식' 등의 저서에서 더 정교해졌다면, 후자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과 '역사주의의 빈곤'에서 확고한 표현을 얻었다.
포퍼 인식론의 처음이자 끝은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기준이 '반증가능성'에 있다는 주장에 있다. 그래서 포퍼가 보기에 프로이트주의나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이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어떤 관찰에 의해서도 반증이 불가능하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이론을 끊임없이 수정함으로써 반증의 기회를 봉쇄하기 때문이다.
포퍼는 나치즘을 피해 뉴질랜드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썼다. 플라톤과 마르크스에 대한 격렬한 비판으로 가득 찬 이 책에서 그는 정의를 향한 인간의 노력은 그것이 개인의 자유 신장을 수반할 때만 진정한 진보를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포퍼는 또 '역사주의의 빈곤'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세계관 노릇을 한 역사주의, 곧 역사 진행의 밑바탕에는 경향성·법칙·리듬이 있다는 견해를 단호히 비판했다. 경험과 토론을 통해 오류를 고쳐가며 자유의 신장과 고통의 극소화를 꾀하는 그의 '점진적 사회 공학'은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기 시작한 1989년 이후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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