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소설가 짐 크레이스(56·사진)는 대기만성형의 작가다. 1974년 처녀작을 발표한 그는 방송 작가로 활동하다가 86년에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99년에 발표한 '그리고 죽음'이 전미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면서 평단과 언론으로부터 '베케트의 죽음 이후 출간된 최고의 책'이라는 환호를 받았다. 미국 소설가 존 업다이크가 "환각적인 기술을 가졌다"고 찬사를 보낸 장편소설 '그리고 죽음'(열린책들 발행)이 번역 출간됐다.
이 소설은 죽음에서 시작된다. 해변의 모래언덕에 중년 부부인 조지프와 셀레스가 차갑게 식은 시체로 누워 있다. 두 사람은 30년 전 처음 만난 곳을 찾았다가 강도가 휘두른 돌에 맞아죽었다. 오후 3시 50분에는 두 사람의 심장과 허파가 그들을 포기하기 시작했으며, 앞서 오후 3시 10분에는 고급 손목시계와 카메라를 노린 강도가 화강암 돌멩이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왔다. 그보다 전 오후 2시 20분에는 추억의 해변가를 찾자는 남편의 요구를 아내가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소설은 이렇게 '그리고 죽음에 이르렀다'는 문장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을 거슬러 짚는다.
소설은 4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체가 생물학적으로 부패하는 과정이 꼼꼼하게 묘사된다. 오전 6시 10분에 눈을 떠 오후 3시 50분에 영원히 눈을 감기까지의 하루가 역순으로 전개된다.
두 사람이 30년 전 학생이었을 때 바리톤만 언덕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 가출한 두 사람의 딸 실비가 돌아와 부모의 시체와 맞닥뜨리고 만감에 사로잡힌다.
작품의 구성이 복잡하긴 하지만 어수선하지는 않다. 오히려 4개의 이야기가 모두 입을 모아 같은 주제를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것은 소설 후반부에서 비교적 명료하게 나타난다.
딸 실비가 아버지가 모아놓은, 자신의 젖니가 담긴 병을 발견하는 장면. '실비는 한 손으로 이가 든 유리병을 감싸쥐고 다른 손으로는 발목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새벽빛이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눈을 감았다. 사랑받는 것과 죽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이 낯선 짜임새의 소설은 인류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질문해온 오랜 주제, 사랑과 죽음의 의미를 묻고 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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