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평양에서 열릴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문제가 중요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핵·미사일 문제는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표명하느냐가 북일 정상회담이 미국 특사 방북 등 북미 대화로 연결될지를 결정짓는 준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13일 뉴욕에서 열릴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방미 중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연일 반복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안전보장상의 문제가 북일 정상회담의 중요한 의제가 될 것임을 밝히고 있다. 또 "북한이 현안 해결에 전향적으로 대응해 관계국과 대화를 촉진하는 것이 불가결하다"며 북한이 보다 진전된 자세로 북미 대화에 임하는 것이 북일 관계의 진전에도 필수적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를 위한 양측의 현안인 일본인 납치문제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청산문제 못지않게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북일 정상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의제라는 점을 미국과 북한측에 동시에 강조하는 것이다.
7일 서울에서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의견조정을 위해 열렸던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에서도 공동발표문에 "한미일은 미사일이나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한 북한과의 오랜 현안에 대해 대화를 통해 대처할 것을 재확인한다"고 미사일 문제를 명시했다. 또 공동발표문은 "한미일은 북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완전한 협력을 개시하기 위해 서둘러 행동할 것을 요청한다"고 핵 사찰 문제도 지적했다. 이는 북일 정상회담에서 반드시 핵·미사일 문제가 다루어져야 한다는 미국의 강력한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미 실전 배치된 노동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들어있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참여하고 있는 일본에게도 북한 핵·미사일은 중요한 안보과제다. 과거 북일 교섭에서 북한측은 핵·미사일 문제는 "북미 협상의 대상"이라며 일본측과의 대화에서는 의제로 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 북일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양측의 사전절충에서는 북한측이 핵·미사일 문제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측이 북일 정상회담에서 IAEA의 핵 사찰에 대한 협력과 2003년까지 유예를 선언했던 미사일 발사실험의 동결을 표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본측의 관측이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강경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는 미국에 대해 북한측도 일본을 통해 핵·미사일 해결의사를 전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어차피 핵·미사일 문제는 최종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선언적 합의를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의 촉진제로 삼을 수 있다면 북한으로서는 1석2조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기도 하다.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이 재개되더라도 미국은 북한에 제공할 경제협력 자금이나 물자의 군사전용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요구 등을 통해 속도와 내용을 조절할 영향력을 갖고 있다. 궁극적으로 북미 관계 개선 없이는 북일 국교정상화도 순탄하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북일 정상회담에서 핵·미사일 문제는 해법에 따라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지렛대로 작용할 수도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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