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한창일 때 집을 옮긴 친구가 있다. 강남행 여부를 놓고 심각한 고민 끝에 결국 재직중인 학교 옆인 종로구 한 동네의 30평대 아파트를 샀는데 지금 그 집 가격은 같은 평형 강남 인기 아파트의 절반 수준이란다. IMF시절엔 강남권의 가격이 더 떨어져 비슷한 돈이면 살 수 있었는데 말이다."대치동 사는 선배가 그 때 그렇게 옆으로 오라고 했는데 난 왠지 강남이 내키지 않아서 말이야…" 이렇게 말하는 친구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당시 강남행을 강력히 반대했던 남편한테 투정을 담아 요즘 강남 집값을 얘기했더니 "난 여전히 아이들 그런 곳에서 키우고 싶지 않아"라며 단호한 표정을 짓더란다.
하지만 친구 남편과는 달리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들을 그 곳에서 키우고 싶어서 강남으로 간다. 강남에 가면 더 좋은 학원이 있고, 더 나은 실력의 선생님들이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 좋은 대학 보내기 위해 발벗고 뛰는 동료 엄마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지금 나이 서른인 큰 조카가 중3때, 시누이도 강남행을 놓고 내게 상담을 해왔었다. 이런저런 논의 끝에 그냥 강북에 남기로 했는데 열심히 공부한 두 아이 다 Y대와 E대 등 이른바 일류대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시누이 친구들은 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때 강남 갔으면 둘 다 서울대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아닌 게 아니라 서울대엔 그 어느 때보다 강남 아이들이 득실댄다고 한다. 전여옥은 서울대에 강연 갔다가 여기는 장동건, 저기는 고수, 이쪽은 원빈, 저쪽은 지성 식으로 훤칠한 미남들만 가득해 놀랐다고 "대한민국은 있다" 에서 털어놓고 있다. 이제 향토장학금으로 공부하는 ‘개천에서 난 용’들의 시대는 갔다고 그녀는 한숨짓는다.
이제 서울은, 아니 대한민국은 강남주민과 비강남주민으로 크게 구분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영어도 강남 아이들이 강북 아이들보다 잘 하고" "세금은 강남 사람들이 훨씬 적게 내며" 심지어 "추석 선물 택배도 고급품은 강남으로 몰린다"고 매스컴은 떠들어댄다.
하지만 강남도 강북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강남 사람들은 이렇고 강북 사람들은 저렇다고 줄을 긋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선배 따라 강남 가지 않은 내 친구나 여전히 후배들만 보면 "강?좋아, 빨리 와서 가깝게 살자"고 부추기는 선배나 모두 건전한 서울시민들이다. 개그콘서트 박성호 버전으로 마무리. "정부는, 아니 매스컴은 서울시를 전부 강남시로 개명하라, 아니면 비강남 사람들이 자존심 상하지 않고 강남에서 살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라, 인정하라. 민족봉숭, 대동단결!!!")
이덕규(자유기고가)기자 boringmo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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