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호스트는 얼굴과 말, 몸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상품입니다. 그 상품이 갖춰야 할 최대 덕목은 미모나 세련된 말솜씨, 현란한 제스쳐가 아닙니다. '저 쇼호스트라면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감이 가장 중요하지요." LG홈쇼핑과 CJ39쇼핑, 현대홈쇼핑 등 3사의 간판 쇼호스트들은 '추석 대전(大戰)'을 앞두고 잔뜩 긴장해있다. 자신들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따라 추석 대목에 쏟아부은 노력의 결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LG홈쇼핑 조선아(33)씨
경력 2년의 패션 전문 쇼호스트 조선아씨는 요즘 오전 10시 방송을 위해 새벽 6시면 스튜디오로 출근한다. 방송 내용은 추석 나들이 수요에 맞춰 최근 출시된 가을 신상품 PB(자사 상표)브랜드 드레스를 소개하는 것. 그는 이미 시청자(소비자)의 입장에 서서 상품에 대한 소재나 디자인 등 정보는 물론 부위별 바느질 땀 숫자까지 욀 정도다.
조씨는 "제가 사고싶은 욕구가 안 생기는 상품의 방송은 가급적 피합니다. 먼저 경험한 소비자로서 친지에게 권하는 입장에 서야 방송이 잘 되거든요." 방송의 '컨셉'은 명절 가사노동의 중압감에 시달리는 주부들에게 '일상의 탈출구'의 하나로서 상품을 선뵈겠다는 것. 그는 "오프닝 멘트에 주부들의 명절 고충과 가을 변신의 욕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과, 그에 맞춰 준비한 상품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MBC 전문MC 2기 출신으로 공중파 방송 경력만 10년에 이르는 베테랑인 그는 "나 역시 내가 방송하는 제품의 열렬한 소비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CJ39쇼핑 이은경(32)씨
"화장품이나 향수, 헤어제품 등 품질이나 성능 테스트는 열흘 이상 제가 직접 합니다. 독점 수입·개발한 기획프로젝트 제품은 한 달 가까이 써보기도 하죠." 쇼호스트 경력 5년차인 이은경씨의 방송에는 "제가 써 봤더니…"식의 돌출 멘트가 잦고, 가끔은 그의 질문에 제조업체측 출연자들이 곤혹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는 "제품에 대한 정보는 사전에 충분히 챙겨두지만 어떨 땐 직접 쓰면서 느낀 궁금증이 방송 중에 떠오를 때가 있다"며 "내가 궁금한 것이라면 소비자도 당연히 알아야 하는 만큼 그 질문이 사전에 준비된 것이냐 아니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달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유명브랜드 패션쇼인 '매직쇼'도 참관하고 온 이씨는 현지에서 모아 온 사진·영상 자료 등을 정리하고 있다. 방송 중간 중간에 한 발 앞선 유행을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다.
결혼 5년차 주부인 이씨는 명절 때면 빡빡한 가계부 때문에 씀씀이를 줄일 수 밖에 없는 '주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요즘은 상품을 선정할 때에도 사은품 하나까지 실용성과 가격을 챙긴다"고 말했다.
● 현대홈쇼핑 박순화(32)씨
"식품은 현대홈쇼핑의 자존심입니다." 박순화씨는 머천다이저(MD)의 고유 영역인 상품 개발·결정 단계에서부터 직접 개입하는 몇 안되는 유별난 쇼호스트(5년차)다. 자신이 방송하는 식품이 바로 자신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갈비를 시식할 땐 양념까지 챙기기 일쑤이고, 제대로 맛을 느끼기 위해 식사시간도 조절할 정도로 깐깐하다. "제가 확인한 품질에 대해서만 고객에게 소개한다는 것이 제 원칙입니다."
그의 방송은 또 유쾌하다. 뮤지컬, 연극, 화장품 모델 등 다양한 그의 경험과 SBS 공채1기 개그맨으로서의 몸에 밴 유머감각이 방송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애드립(즉석대사) 역시 주고 받는 파트너와의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에 옛 동료들을 자주 초대하고, 상품에 맞는 즉석 꽁트나 '굴비송'등 로고송도 곧잘 만들어 선뵌다.
그는 최근 '주문폭주'나 '매진임박'등 멘트를 자제하고 있다. 추석시즌이라 식품 매출 비중이 높고, 또 중요하지만 충동구매를 부추겨 거품수요를 일으키면 궁극적으로 현대홈쇼핑과 쇼호스트로서의 자신에 대한 믿음이 훼손될 수 있다는 판단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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