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출연한 사극인데 상투 틀고 첫번째 찍은 장면이 뭔지 아세요? 설이(김유미)를 겁탈하는 장면이었어요. 미수로 끝나기는 했지만 제 첫 인상이 그 정도로 더러웠나 봅니다."10일 촬영장인 경기 용인시 한국민속촌에서 만난 탤런트 윤용현(31·사진)은 불만부터 털어놓았다. 방송중인 KBS 2TV 수목드라마 '태양인 이제마'에서 주인공 이제마(최수종)와 설이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악당 장봉수도 자신의 외모만큼은 불만인 모양이다. 1994년 MBC 공채탤런트로 연예계에 입문, 단막극 30여 편에서 맡은 역이 강간범 건달 양아치 뿐이다. 그를 본격 대중스타로 알린 99년 MBC 드라마 '왕초'에서도 그는 정수리에 도끼자국이 난, 일자무식의 얼치기 깡패 '도끼'였다.
"하기는 제가 얼굴이 알려지기 전에는 카페 종업원들이 제 얼굴을 똑바로 보고 주문을 받으려 하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탤런트가 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이런 그도 요즘 장봉수 역을 통한 대중적 인기는 즐거운 모양이다. 민속촌 관람객 대부분이 그를 알아봤다. "설이 좀 그만 괴롭히세요"라고 말하는 아주머니까지 있다.
드라마 기획 당시 장봉수는 이름조차 없었는데 지금은 최수종에 버금갈 정도로 야외촬영 분량이 많다. "처음 출연조건은 이랬습니다. '이제마가 워낙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의인이기 때문에 초반에만 잠깐 출연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주연급으로 촬영을 합니다. 지난달에는 13일 동안 야외촬영을 했어요." 그만큼 그가 열심히 한 덕분이다.
그러면 서늘한 눈빛에서 풍기는 강렬한 인상이 그의 전부일까. "장봉수 역을 맡자마자 신갈 승마장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장봉수가 무인이니까 말 타는 것은 기본이거든요. 지금도 엉덩이가 새까말 정도에요." 왼 팔은 지난달 말 타고 활 쏘는 장면을 찍다가 낙마해 뼈에 금이 간 상태. "대역을 쓰자"는 PD 말에 "수종이 형도 하는데 왜 저라고 못합니까"라고 말하며 직접 연기를 펼치다 그렇게 됐다.
"후배 연기자들에게 늘 그래요. 적극성을 가져라. 배역이 안 들어오면 직접 PD를 찾아가서 졸라라. 그래서 얻은 배역에는 최선을 다 해라. 저 역시 다른 드라마 출연 섭외가 있지만 '장봉수'의 신비감을 위해 사양하고 있습니다. 겹치기 출연은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요즘 신세대 연기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연기에 대한 욕심이자 배우로서의 자존심이다.
/글·사진 김관명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