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에 있다 보면 서울대가 일선 교육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대가 입시정책을 바꾸면 다른 대학이 따르기 때문에 교사, 학부모, 학생들은 서울대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서울대가 신입생 모집방안을 학내문제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런데 최근 발표된 서울대의 '2005년 대입전형방안'을 보면 서울대가 우리 교육 현안에 대해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전형안에 포함된 '필요 최소 이수단위제'는 서울대 지원자에게 고교과정 이수에 필요한 192단위 가운데 130단위를 이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30단위를 이수하려면 특정 교과목에 집중하기 어려우며 교과목의 대부분을 공부해야 한다. 서울대는 고교 시절에 기초소양을 충분히 쌓아야 대학 교육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는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제7차 교육과정의 취지를 뒤흔드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번 개편안에서 학생이 특정 교과목을 선택해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부 발표 후 일선 학교들은 선택과목별 이동수업에 따른 혼란, 학급 편성의 어려움, 교사 수급상의 애로에도 불구하고 개편안에 맞추느라 애를 썼다. 그런데 서울대가 갑자기 교육부의 교육과정 개편안을 뒤집으며 '과거 회귀형 입시안'을 덜컥 내놓은 것이다. 다행히 서울대는 입시안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사회·과학 교과에 한해 대체이수를 인정하는 등 최소 이수단위 완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서울대의 태도를 보면 여전히 우수한 인재를 독식하겠다는 의도와 우월주의가 깔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서울대는 '교육 권력'으로서 누리고 있는 특권에 상응하는 현명한 판단을 하루빨리 내려주기를 바란다.
전상훈 광주일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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