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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핏빛 바다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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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핏빛 바다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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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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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 때면 우리 바다는 핏빛으로 절규한다. 검붉은 파도와 수천톤의 물고기 사체는 병든 바다의 처절한 고통을 우리에게 호소한다. 예년에 비해 일찍 시작된 올해의 적조는 폭우와 태풍으로 다소 약화하고 엄청난 수해에 묻혀버렸지만 지금도 여전히 남해와 동해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적조는 바닷물에 인이나 질소와 같은 식물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풍부하며 일사량이 많고 수온이 높을 때 발생한다. 특히 바닷물이 정체되어 있는 폐쇄성 내만(內灣) 해역은 적조 발생에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우리나라 남해는 이러한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남해를 연상케 하는 표현인 '다도해', '따뜻한 남쪽', '한려수도' 등은 곧 적조 발생의 최적 해역임을 의미한다.

우리 역사에는 이미 신라시대부터 적조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역사 속에 가끔 등장하는 적조는 발생 후 사흘 정도, 길어야 10여일 지속하다 그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피해는 없었지만 당시 선조들은 자연이 분노하는 불길한 징후로 알았다.

근래에 와서 적조가 처음 기록·보고된 곳은 1962년 경남 진동항이다. 그 후 1970년대 중반까지는 진동항이나 마산항과 같은 일부 폐쇄성 내만에서 여름철에 소규모로 발생하여 일주일 정도 지속하다 그쳤다. 이때 번식한 적조생물은 독성이 없는 규조류였기 때문에 피해 규모가 비교적 적었다.

그러나 81년 부산, 진해, 통영 일대에서 발생한 적조 때 맹독성의 편모조류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양식장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그 후 남해안 곳곳에서 적조가 발생했으며 시기도 여름 한철이 아니라 4월부터 10월까지로 확대되었다. 90년에는 비교적 청정해역으로 알려진 제주도 연안까지 적조가 발생하였고 95년에는 동해안 울진 앞바다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적조는 우리 양식업을 초토화시키는 한반도 최악의 바다 재난이 되고 있다.

최근 적조 발생이 극심해지고 범위가 동해까지 확대되는 것은 지구 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는 어종을 보면 90년대 이후 한류성 어종인 대구나 명태 등은 급격히 감소하고 난류성 어종인 멸치와 오징어 등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바다가 점점 더워지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되는 지구 온난화와 더불어 더욱 심각한 적조를 겪게 될 것임을 말해준다.

여기에 육지에서 배출되는 생활하수는 적조생물의 좋은 영양분이 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내륙 지방의 하수처리율은 70%에 달하나 해안은 51% 정도이다. 그나마 모든 하수처리는 유기물을 제거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적조의 영양물질은 상당량 그대로 배출된다. 또 우리나라 연안에 빽빽이 들어선 양식장에서 나오는 배설물과 여기에 뿌려지는 사료도 적조 발생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육지에서 사용되는 비료도 적조 발생에 크게 기여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OECD 가입국 중 단위 농지 면적당 가장 많은 양의 비료를 사용한다. 95년 기준으로 질소비료는 22.3톤/㎢, 인산비료는 10.6톤/㎢을 사용하며, 이것은 OECD 평균치에 비해 각각 10.6배, 11.8배나 많은 양이다. 이렇게 많이 뿌려진 비료는 빗물에 씻겨 결국 바다로 간다.

우리는 지금까지 매년 반복되고 증폭되는 적조를 당하면서도 무엇하나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발생 후에 황토 뿌리기만 되풀이할 뿐이다. 보다 적극적인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 해안지역의 하수처리율을 높이고 처리한 하수를 폐쇄성 해역 밖으로 배출하는 방법을 강구하여야 한다. 또한 비료 사용을 규제하여 바다로 유입되는 영양물질을 줄이고, 적조발생 시기만이라도 해안도시의 하수를 고도처리 하는 방안이 추진되어야 한다. 오염 항만을 준설하고 어장 휴식년제를 강화하여 바다의 자정능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특히 적조에 민감한 남해의 연안개발을 보다 엄격한 환경기준으로 규제하여야 한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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