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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접속불가 세상, 소녀는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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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접속불가 세상, 소녀는 분노한다

입력
2002.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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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아저씨 라이터 하나만 사주세요." "라이터 두 개 사줄게 네 몸을 주지 않으련."

성냥팔이 소녀(줄여서 '성소')는 이렇게 세상에서 외면 당하고 결국 라이터 가스를 마시며 행복한 기억에 젖어 죽음을 기다린다. 그녀가 마시는 가스는 죽음의 유혹인가, 행복한 동반자인가.

게임에 빠져 지내던 중국집 배달원 주(김현성)가 이번에는 사랑에 빠졌다. 게임방 아르바이트생 희미(임은경)에게 반하지만 그녀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는 길거리에서 희미와 똑같이 생긴 성소에게 라이터 하나를 산다. 라이터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접속하시겠습니까"란 안내가 나오고 그는 게임에 접속한다. 가상현실로 들어간 그는 그곳에서 수많은 경쟁자를 만나면서 성소를 구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게임은 세 단계로 진행되며 '시시하게 끝나는 버전'과 '해피엔딩 버전' 의 열린 구조로 끝을 맺는다.

■대체 무엇을 얘기하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분노에 대한 영화다. 장난 전화에 속아 요리를 잔뜩 들고 배달을 온 주는 매정하게 내쫓는 넥타이 맨 인간들을 기관총으로 난사한다. 물론 환상이다. 그는 무기력하게 배달통을 들고 나올 뿐이다.

라이터를 파는 소녀에 대해 세상은 무관심하고, 그건 소녀도 마찬가지다. 세상과 소녀는 접속 불가. 접속되지 않는 관계란 필연적으로 분노를 낳는다. 첫사랑이었던 가수 가준오(강타) 외에는 누구에 대해서 관심도,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 성소 역시 레벨 2에서는 라이터를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기관총을 쏘아댄다. '나쁜 영화' '거짓말'처럼 세상의 미성년자와 성년자를 적대적 관계로 규정한다.

■독특한 키치적 매력

각종 영화와 문화코드에 대한 패러디와 유머. 무성 화면과 자막으로 꾸민 도입부부터 끊임없이 키치적 매력을 드러낸다. 다양한 캐릭터의 게임 속 전사들은 유머의 최전선에 서 있다. 중국 최초의 성전환자인 무용수 진싱은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며 주가 진정한 게이머가 되도록 도와주는 레즈비언으로 그의 중성적 목소리와 대사는 관객에게 이질적인 웃음을 요구한다. "어둠 속에 떨고 있는 갈가마귀 같은 자들아, 이젠 밝은 세상에서 살아가려무나"(류승완 감독의 영화 '다찌마와리'의 대사)를 외치는 오인조 플레이어, 무기를 밀매하는 불법 접속자 오뎅의 가게에 들른 '레옹'을 닮은 남자와 소녀도 있다.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오히려 토사구팽을 당해 낚시대를 드리우고 후일을 도모하는 불법접속자 추풍낙엽(명계남)은 주나라 강태공을 패러디한 것. 헤어드라이어처럼 생긴 첨단 총인 '고등어'가 실제 고등어로 바뀌어 주인을 찾아가는 장면도 귀엽기 짝이 없다. 주가 소녀를 구하기 위해 소녀의 기억을 조정하는 시스템으로 접근하는 과정에 보이는 그래픽과 액션도 꽤나 자극적이다.

■감독의 철학, 혹은 한계?

디지털 이미지에 많이 기댔지만 수준은 매우 초보적이다. 전화번호는 0, 1의 2진법으로 구성되고, 시스템 보호망도 이들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어디서 봤더라. 바로 '매트릭스'! 다르다면 장자의 나비꿈이나 불교의 금강경 등 극히 동양적 텍스트와 결합했다는 것이다. 현실과 게임을 오가는 설정만 이해한다면 단순한 구성인데도 '어렵다'는 느낌을 주는 것 역시 이율배반적인 게임의 규칙이나 금강경의 구절 등 '말장난'의 덫에 걸렸기 때문.

게임을 즐기지 않는 30대 이상에게는 구성이 산만하고,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에게는 너무 단순한 것도 한계이다. 순제작비 91억원에 걸맞지 않게 가상현실 속의 미래가 엉성한 것은 이 영화의 정서가 아무리 '키치적'이라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13일 개봉. 15세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 영화에 관한 소문과 진실

참 말도 많았던 작품이다. 제작기간이 길어지고, 제작비가 많이 들어 갈수록 그에 비례해 온갖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렇게 말 많은 영화치고 제대로 나온 적이 없다"는 충무로의 징크스를 들먹이기도 했다. 그 소문과 진실들.

하나―오랜 지기이자 대학(서울대) 동문인 신씨네 신철 대표와 장선우 감독이 이 영화로 원수가 됐다. '거짓말'의 제작으로 곤혹을 치른 신철 대표와 장 감독이 저작권으로 갈등을 빚은 것 사실. 애초 신씨네가 제작하기로 하고 기획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둘―투자를 맡은 튜브엔터테인먼트가 엄청나게 늘어난 제작비 때문에 CJ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갈 뻔했다. 사실이었다. 도저히 제작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한때 매각을 전제로 협상을 했다. 다행히 '집으로…'가 흥행에 성공해 지금은 안심.

셋―튜브가 제작을 중단하려 했다. 2000년 말, 시나리오도 완성되지 않은데다 순제작비가 처음 예상했던 것(35억원)의 2배 가까이 나오자 10억여원을 투입한 상태에서 포기를 선언했다. 그리고 2주일 뒤 계속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제작비의 낭비가 심한 것은 제작사인 기획시대의 유인택 대표와 장 감독이 너무 친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튜브가 직접 제작비 집행권과 현장을 통제하겠다고 선언했다.

넷―그 때문에 장선우 감독이 촬영도중 한달 동안 잠적했다. 장선우 감독은 일주일이었다고 밝혔고, 무엇보다 스태프의 처우문제가 걸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섯―한국영화 사상 최장 촬영기간을 기록한 것은 장 감독이 튜브엔터테인먼트를 골탕 먹이려는 의도이고, 제작비도 다른 곳으로 샜다. 소문일 뿐, 확인불가. 이런 모든 소문을 잠재우는 비방은? 제작비를 건지고도 남을 만큼 대박을 터뜨리는 것. 영화를 둘러싼 모든 소문은 돈에서 나오고, 돈으로 쑥 들어간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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