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및 주택 은행의 진정한 합병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D데이는 추석연휴 다음날인 23일. 일요일인 8일 서울 마포구 염창동 국민은행 전산센터. 국민의 절반이 넘는 3,000만명의 고객정보와 7,000만건의 계좌를 한 군데로 합치는 이른바 'IT(정보기술) 통합'을 앞두고 직원들은 휴일도 잊은 채 막바지 점검작업으로 분주했다. 이날 과제는 전국 1,250개 지점이 동시에 참여하는 마지막 '모의테스트'. 통합 전산시스템을 켜놓은 상태에서 평소처럼 실제 영업을 해보는 실험이다. 수백명의 직원들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각종 데이터와 씨름하고, 전화로 여기저기 지점에 무언가를 지시하는 모습은 마치 전쟁 상황실을 방불케했다.***3,000만 고객, 7,000만 계좌 통합
"IT통합은 단순한 프로그램의 통합이 아니라 은행의 생존이 걸린 사안입니다. 새 시스템이 정상가동하는 23일까지 예기치 못한 오류를 해결하지 않으면 합병은행의 진정한 출범 역시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전산정보본부 강응구 팀장의 설명이다. 다행히 이날 모의테스트는 '합격점'을 받았다. 이제 추석 연휴인 20∼22일 모든 은행서비스를 중단한 채 국민·주택의 데이터를 한곳으로 합치기만 하면 통합시스템이 비로소 제 기능을 하게 된다.
올 1월 옛 주택은행 전산시스템이 통합시스템으로 확정된 이후 8개월 간의 준비과정이 모두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일요일인 7월7일 6개 점포를 대상으로 한 첫 실전테스트 때는 컴퓨터를 켜자마자 원인 모를 오류로 갑자기 전산망이 다운되면서 무려 1시간 반 동안 은행 시스템 전체가 '먹통'이 됐다. 평일 영업시간 중에 이런 일이 발생했더라면 엄청난 금융혼란이 야기됐을 아찔한 경험이었다.
실제로 올해 출범한 일본의 초대형 합병은행 미즈호는 전산통합 직후 시스템에 장애가 생겨 현금자동입출금기(ATM) 7,000여대가 동시에 정지되고, 고객계좌에서 3만여건이 이중 인출되는 등 대혼란을 겪었다. 이 같은 사고 가능성에 대비해 지난달 4일 전국 점포를 대상으로 한 모의테스트에서는 고의로 전산장애를 유발하는 실험까지 했다.
***IT통합은 합병의 화룡점정
IT통합은 은행간 합병의 '화룡점정'이다. 전산 시스템이 하나로 통일돼야 고객정보와 예금 및 대출자산, 네트워크 등을 비로소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자산 200조원을 바라보는 국내 최대의 국민은행 역시 지난해 11월 합병은행의 간판을 내걸긴 했지만 그 동안 사실상 '한 지붕 두 살림'을 해왔다. 옛 주택은행과 옛 국민은행이 각기 다른 IT시스템을 운영, 은행간 교차이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IT통합이 이뤄지면 합병의 위력은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옛 국민(1,444만 명)과 주택(1,493만 명)의 고객들은 전국 1200여 지점을 비로소 한 은행처럼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은행 입장에선 고객관계관리(CRM)나 신상품개발, 금리정책 등에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진다. 은행권이 국민은행의 'IT통합 이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통합시스템은 초당 1,000건 이상의 거래를 365일 내내 한시도 정지하지 않고 처리하는 세계 최대 용량의 무장애·무정지 전산시스템이라는 게 국민은행측의 자랑. 업그레이드 비용만 약 680억원이 들어갔다. 하지만 IT통합은 이 같은 비용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막대한 시너지를 낳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재인 전산정보본부장은 "IT통합이 성공리에 이뤄지면 국민·주택은 지난해 11월 합병이후 1년 만에 비로소 완전통합을 하게 된다"며 "합병 국민은행에 대한 평가는 IT통합 이후로 미뤄달라"고 부탁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