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영한(55)씨는 최근에 영화 '오아시스'를 봤다고 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가 곧 내가 익숙한 세계와 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얼마 전 내가 바로 저런 유형의 불구 인간을 확장시켜 소설로 다뤘지, 라고."박씨가 중편소설 '카르마'(이룸 발행)를 출간했다. 장편 '장강(長江)' 이후 6년 만에 세상에 내놓는 작품이다. 그는 일찍이 "인간을 생짜배기 알몸뚱이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 좋은 소설을 낳을 수 있는 힘이 아닌가"라고 말했었다. 박씨의 작품세계가 그러했다. '머나먼 쏭바강'은 1970년 파월병으로 겪은 전쟁 체험이었고, '우묵배미의 사랑'은 81년 경기 남양주시 한 마을에서 세들어 산 1년이었다. 소외된 우리 이웃들의 왁자한 수다가 소설 속 인물들의 진솔한 대화로 그대로 옮겨진 소설들.
"새 소설은 달라졌다"고 작가는 말하지만, 벌거벗은 몸뚱아리에서 나오는 박씨 소설의 힘은 여전히 강하다. 그는 5년 전 겨울 어느날 대관령으로 떠났고, 농주나 한 잔 마시려고 귀틀집에 들어갔다가 엉겁결에 그곳에 눌러앉아 버렸다. 해발 700m 고지의 마을에서 보낸 한 계절이 소설 '카르마'가 되었다.
"나는 그동안 역사와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의식, 소외된 주변인의 문제에 집중했었다. 그런데 시선이 낯선 세계로 옮겨졌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왔으며 이승에서의 삶을 끝내면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광대한 우주에서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소설 속의 작가처럼 박씨는 '징그럽게 처치곤란한 허무가 꿈틀거리면서 가로누워 있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산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사지가 절단된 한 사내를 만났다. 절굿공이 같은 팔로 밥을 먹고 담배를 피며, 허벅지 끝에 묶어놓은 자동차 타이어 신발로 기어 다니는 사내에게서 그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사내처럼 어머니도 심한 관절염 때문에 바닥을 기어다녀야 했다. 사내의 형은 제대로 된 말 한 마디 만들어내는 것을 힘겨워하면서도 한문을 제법 쓸 줄 아는 기이한 사람이었다. 좀 모자란 듯 보이는 그 남자의 얼굴 뒤에 박씨의 형이 있었다. 재기가 출중했지만 시대의 광기를 이기지 못하고 미치광이가 돼버린 이복 형이었다. 생전에 축생 같은 삶을 살다 간 어머니와 현실에서 도망쳐 행려병자로 떠돌던 맏형. 가족이란 결국 모든 인간에게 지워진 업(業·카르마·karma)이 아니던가. "가족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다. 피붙이를 가깝게 느껴보지 못했다"던 박씨는 산골의 낯선 사람들에게서 업을 만났다.
생명 있는 것들이 한없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작가의 상상력은 환상의 세계로까지 뻗어간다. "팔다리가 몽땅 절단된 불구가 걷고 뛰고 날아오르는 장면이 있다. 내 소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환상적인 장면이다. 고백하자면 예전의 틀을 깨려는 의도라고 할까. " 그러나 현실은 아직 작가의 등짝에 들러붙어 있는 것 같다. 꿈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소설의 한 장면에서 불구 사내를 등에 업은 소설가 화자가 말한다. "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이 번거로운 짐짝을 과연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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