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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2188>9·11 1주년,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에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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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2188>9·11 1주년,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에서(상)

입력
2002.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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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제로는 깨끗이 치워져 있다. 기초공사를 하고 있는 신축 공사장처럼 지하 부분이 깊게 패인 채 고요하다. 그라운드 제로를 보러 온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뻗어 있다. 그들은 조용히 울타리 너머로 깊게 패인 웅덩이를 바라본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이 붕괴한 참극의 현장이 바로 이곳인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뉴욕시는 무너져 내린 110층짜리 두 개 건물의 잔해 180만 톤을 10개월이나 걸려 치웠다고 한다.비극은 길 건너 성 바오로 성당에 살아 있다. 성당의 긴 철책을 따라 '통곡의 벽'이 이어진다. 티셔츠, 봉제 곰, 야구 모자, 스카프, 쿠션, 조화와 생화, 편지, 그림과 글이 담긴 플래카드, 양초, 고인의 사진, 실종자를 찾는 포스터 등 수많은 물건들이 담 4개 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9·11 테러 직후 실종자를 찾는 사진과 메모로 채워졌던 담장은 이제 죽은 이들을 추모하고, 아메리카에 신의 가호를 빌고, 서로 용기를 북돋우는 글로 가득 차 있다.

<크리스틴, 2001년 9월 11일 전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편이었어. 그러나 이제 나는 슬픈 사람이 되었어…>

<우리 아빠, 우리 천사, 다시 하나가 되리>

<우리들의 영혼 속에, 마음 생각 기도 속에 당신은 항상 같이 있어요. 당신 곁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눈물이 계단을 만들 수 있다면 추억이 길을 뚫을 나는 곧장 하늘로 가서 너를 데려 오겠네 굿바이 인사말도 할 새 없이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너는 가버렸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이유를 아네 우리 가족의 텅 빈 마음 하루도 잊고 살 없어 25년간 너와 함께 했던 날들 얼마나 큰 축복이었나 그래서 우리는 매일 슬픔으로 살아가네…>

<아메리칸 에어라인즈 175편 조종사 승무원 승객들, 그들은 영웅이고 천사다>

<텍사스는 2001년 9월11일을 기억합니다. 그날 우리는 모두 뉴요커였습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무서워하지 실패하지 잊지 것이다>

<사람을 찾음. 에스토 신트론 3세. 27세. 브라운 아이즈. 키 5피트 10인치. 몸무게 170파운드. 104층 캔톨 핏츠제럴드 회사 근무. 손에 점 있음…>

<당신을 사랑해요. 너무 그리워요!>

<뉴욕이여 다시 일어나 자유를 세워라>

<갓 블레스 아메리카!!!>

담을 따라 걷는 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KBS가 이산가족 찾기를 할 때 가족과 친지를 찾는 애달픈 벽보가 빽빽이 붙어있던 KBS건물과 여의도 일대가 떠올랐다. 이 나라 사람들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뼈 아픈 역사를 갖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을 따라 걸으며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고 있었다. 뉴욕을 찾는 세계인들이 이 벽 앞에서 계속 눈물 흘릴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새로운 통곡의 벽을 만들어 자신의 만행을 온 세계에 증언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의 것이지만, 이 새로운 통곡의 벽은 테러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온 인류의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도 9·11 사태를 믿을 수 없다. 나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다. 미국인들이 미국 안에서 이런 공격을 받았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도 공포와 분노로 괴롭고, 테러가 또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왜'라는 질문을 자주 해 본다. 미국이 왜 이런 테러의 대상이 되었을까.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만난 한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뉴욕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처음으로 그라운드 제로에 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면서 쏟아내는 먼지와 재를 뒤집어쓰고 밀랍인형이나 청동상 같은 모습으로 폐허 위를 뛰어가던 뉴욕 시민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 9·11 1주년을 맞고 있다. 9·11 테러로 모두 3,040명이 목숨을 잃고, 뉴욕에서만 950억달러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 뉴욕시는 30억달러나 세입이 줄었고, 뉴욕 시민들이 잃은 일자리는 14만6,000여개로 추산되고 있다. 뉴욕은 심각한 불경기 속에 9·11 1주년을 맞고 있다.

이런 시련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깨달은 것은 가족과 종교의 소중함,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봉사와 헌신의 중요성이었다. 결혼하거나 아이를 갖는 사람이 전보다 늘어나고, 교회를 찾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고 신문들은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테러 현장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자신의 목숨을 잃은 소방관, 경찰관들이 미국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 오르고 있다. 9·11 테러 후 보통 사람들은 영웅이 되고 머리 좋은 금융인과 CEO들은 엔론 사건 등으로 감옥에 갔다고 꼬집은 신문도 있다.

세계 경제의 심장인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쓰러진 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되살아 난 것은 오래 잊고 있던 기본적인 가치들이었다. 통곡의 벽에서 가장 자주 읽게 되는 단어는 '사랑'이고, 우리를 가장 크게 울리는 단어도 '사랑'이다. 테러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파괴하게 되는가. 그것은 '사랑'이라고 통곡의 벽은 말한다. /본사 이사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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