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아리랑, 그 풀림의 소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아리랑, 그 풀림의 소리

입력
2002.09.11 00:00
0 0

우리 민족의 정서를 아리랑만큼 잘 아우르는 민요도 드문 것 같다. 이념의 벽도 아리랑의 선율 앞에서 저절로 허물어지곤 하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보아왔다. 아리랑은 민족이 위기에 놓일 때 마다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하는 소리로 기능해온 것이다.7일 끝난 남북통일축구경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식전행사에서 장사익의 절창에 실린 아리랑은 곧바로 통일의 화음이 되었다. 장사익이 부른 아리랑의 원제는 '그리운 강남'으로 김형원의 시에 월북작곡가 안기영이 곡을 붙인 것이다. 해방 전에 작곡된 것으로 알려진 이 아리랑은 1950년대 까지만 해도 소녀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즐겨 부른 노래라고 한다.

남북교류의 마당에서 아리랑은 서로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진언(眞言)이 된다. 특히 축구나 탁구처럼 단일팀이 구성됐을 때 한반도기와 아리랑은 남북 양측의 국기와 국가를 대신하는 역할을 했다. 29일 막이 오르는 부산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도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 선수단은 아리랑연주에 맞춰 입장한다.

한반도기와 아리랑이 '민족이 하나임'을 상징하지만 감정이입의 정도에 있어서는 그 크기가 다르다. 아리랑은 정서적으로 남과 북을 하나로 묶어준다. 바로 아리랑의 힘이다.

"단가를 결정할 차례가 됐는데 양측 의견이 아리랑으로 일치했습니다. 북측에서 녹음기에 아리랑 노래를 담아왔는데 노래가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지요." 베이징아시안게임을 1년 앞두고 남북단일팀 구성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89년 10월 열린 3차 남북체육회담에 남측 대표로 참석했던 장충식(張忠植) 단국대 이사장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당시 남북양측은 단일팀의 단기(團旗)로 한반도기, 단가(團歌)로 아리랑을 채택했다.

아리랑은 풀림의 노래다. 풀림의 반대편에는 맺힘이 있다. 우리는 외세에 의해 국토가 잘리고 민족이 갈라지는 한을 안고 살고 있다. 강요된 분단이기에 한이 맺힌 것이다. 아리랑에 응축돼 있는 풀림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민속학 연구자들은 그 답으로 아리랑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제시한다. 고려 유신들의 망국의 한에서 찾고 있는 아리랑의 기원설은 이 노래가 태생적으로 역사성과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아리랑의 역사화와 사회화는 일제강점기에 가장 두드러진다. 그리고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중첩돼갔다.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백두산 고개로 넘어간다' '삼십육년간 피지 못한 무궁화는 을유년 팔월십오일에 만발하였네' '사발그릇 깨지면 두세쪽이 나는데 삼팔선이 깨지면 한 덩어리로 뭉친다' 등의 노래 말이 그러한 과정을 잘 설명해준다.

아리랑은 스스로 역사화와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시공을 뛰어넘어 살아 숨쉬고 있다. 그것도 단순히 과거의 화석으로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새 생명력을 얻은 것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통일아리랑'이 세상에 태어나 소리 높여 부를 날이 오리라.

이기창 체육부장

lkc@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