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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내연산/ 계곡비경 감추려 숲을 한겹 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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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내연산/ 계곡비경 감추려 숲을 한겹 걸쳤나

입력
2002.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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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즐기는 법/연산폭포까지 왕복 2시간半 정상 다녀오려면 5시간 걸려수도권에서 무척 멀다. 당일 산행은 거의 불가능하다. 적어도 이틀 일정을 잡아야 피로를 덜 수 있다. 포항시의 북쪽 끝이기 때문에 영덕 쪽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중앙고속도로 안동IC에서 빠져 34번 국도를 이용해 영덕으로 넘어간 후 7번 국도를 타고 포항으로 이동한다. 7번 국도변에 보경사 이정표가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내연산 등산로는 다양하다. 등산이 아닌 관광이 목적이라면 연산폭포까지 계곡길을 왕복하는 코스를 택한다. 왕복 2시간 30분 정도. 길도 평탄하고 넓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다녀올 수 있다.

내연산 정상을 오르는 가장 대중적인 코스는 보경사-문수암-문수봉-내연산-은폭포-관음폭포-보경사로 약 5시간이 걸린다. 깔끔한 암자 문수암에 들를 수 있고 계곡을 내려다 보는 조망이 좋다. 적당한 등산을 원하는 이들에게 권할만하다.

2개의 종주코스도 있다. 포항 지역의 산꾼들이 1년에 적어도 한 두 차례씩 주파하는 인기 코스이다. 문수봉과 내연산 그리고 인근 향로봉 등 3개의 봉우리를 오르는 것이 첫 종주코스. 약 7시간 30분이 걸리는 장거리 산행이다. 특히 향로봉 정상 부근에서 코를 거의 땅에 대고 올라야 하는 가파른 곳이 있다. 두번째 종주코스는 첫 종주코스에 천령산, 삿갓봉, 매봉 등 3개의 봉우리를 더 추가하는 등산로이다. 거의 10시간이 걸린다.

산 아래에 큰 숙박시설은 없다. 보경사 입구 먹거리촌의 식당들이 대부분 민박을 친다. 3만 원 선이다. 먹거리촌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손칼국수. 식당 아주머니들이 거리에 평상을 펴놓고 직접 홍두깨를 밀어 칼국수를 만드는 모습을 관광객에게 보여준다. 송라면사무소 (054)243-6001

■울창한 숲 지나 정상에 서면 동해바다·영남 봉우리들 한눈에 하산길 만나는 12폭포 "장관"

"오데서 왔능교? 서울이라꼬요? 아이고 멀리서도 오셨네. 본전 뽑아 가이소."

표를 받는 관리소 아저씨의 '본전'이라는 말에 살짝 웃음이 나온다. 입장료 2,000원. 웬만한 국립공원(보통 1,300원)보다 비싸다. 주차료 2,000원을 이미 냈고, 서울에서 5시간 30분을 달려 왔으니 정말 본전이 많이 들었다. 내연산(710m·경북 포항시 송라면, 죽장면) 산행은 이렇게 조금 과(?)한 투자로 시작됐다.

산행의 출발지는 산 아래의 고찰 보경사이다. 신라 진평왕 25년(603년)에 지명법사가 중국에서 불경과 8면 보경(거울)을 가지고 와 연못에 묻고 절을 세웠다고 해서 이름이 보경사이다. 지금의 절집은 대부분 조선 숙종 3년(1677년)에 지어진 것이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이 절에는 보물이 많다. 보물 제252호인 원진국사비와 제430호인 원진국사부도 등이 있고 경북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있다.

등산로는 보경사 왼편으로 나 있다. 관리소 아저씨의 충고대로 문수암-문수봉을 거쳐 내연산(삼지봉)에 올랐다가 내연계곡을 따라 하산하기로 했다.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약 30분 정도 평탄한 길을 걸으면 오른쪽으로 문수암에 오르는 길이 나온다. 그 30분간 왼쪽으로 눈이 고정된다. 규모가 꽤 큰 계곡이다. 물이 무척 맑다. 물을 담고 있는 바위의 색은 거의 분필에 가까운 백색이다. 그래서 고여있는 물이 유난히 푸르다. '저 물 속은 얼마나 고요할까.' 마음의 정화를 느낀다. 아쉽지만 갈림길에서 물과 헤어져야 한다. 하산길에 실컷 볼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문수암까지는 약 1시간. 흙길을 따라 걷는다. 가파른 구간도 있지만 그리 힘들지 않다. 나무와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사람 키보다 약간 높은 소박한 일주문이 문수암의 입구이다. 요사채 앞마당의 감로수에 목을 축이고 물통을 채운다. 물맛이 참 달다. 큰 어미개와 갓 태어난 강아지 몇 마리가 볕을 쬐고 있다.

문수암에서 약 1시간을 산을 타면 문수봉, 평탄한 능선길을 약 50분간 걸으면 내연산 정상이다. 내연산 봉우리는 삼지봉이라고도 불린다. 봉우리에 나무가 빽빽하다. 시원한 조망을 원한다면 숲을 헤치고 조금 걸어나가야 한다. 영남의 봉우리들과 푸른 동해의 파도가 보인다.

하산길은 흙길이면서 가파르다. 산꼭대기에서 바로 계곡으로 연결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미끄러짐을 조심하며 엉금엉금 내려간다. 약 1시간. 귀로 계곡이 가까와졌음을 느낀다. 어마어마한 물소리이다. 숲이 짙어 계곡은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물가에 다 가서야 겨우 푸른 물줄기를 만난다. 등산로 초입에서 보았던 계곡의 상류이다. 내연계곡 혹은 갑천계곡이라 불린다. 내연산 산행의 하이라이트이다.

굵은 계곡물은 얌전히 흐르지 않는다. 수 많은 폭포를 이루며 거친 소리를 낸다. 은폭포, 연산폭포, 관음폭포, 쌍생폭포 등 규모가 큰 폭포만도 12개에 이른다. 그래서 12폭포 계곡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하산길은 이 폭포들의 모습과 소리로 가슴을 씻어내는 길이다. 계곡길이지만 그리 쉽지는 않다. 깎아지른 절벽이 마주보는 계곡에서는 그 절벽을 타고 넘어야 한다.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하는 숨 가쁜 산행이다.

대부분 관음폭포 주위에서 긴 휴식을 취하며 산행의 아쉬움을 달랜다. 두 줄기의 물줄기가 힘차게 떨어진다. 바위에는 물길에 패인 굴이 마치 백골의 눈구멍처럼 나 있다. 차가운 물 속에 벗은 발을 담그며 먼 길을 온 보람이 있었다고 느낀다.

지난 수마(水魔)는 이 깊은 산 속도 많이 할퀴어 놓았다. 관음폭포 위로 연산폭포와 연결하는 철다리가 있다. 내연산의 명물이다. 불어난 계곡물에 쓸려 굵은 철골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덩그러니 매달려 있다. 산이 스스로 순수한 자연으로 있고 싶다고 인간의 구조물을 벌한 것일까.

/포항=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주변 들를만한 곳/ 장기곶·삼사해상공원 일출 유명

내연산 주변에는 볼거리가 많다. 기왕에 떠난 먼 길, 많은 추억을 만들어보자.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다. 산 인근에만 해수욕장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다. 화진 해변이 지척이다. 폭 100m, 길이 400m의 아담한 해변이지만 모래가 희고 백사장 뒤로 소나무숲이 조성되어 있어 휴식을 즐기기에 좋다. 해변 뒤로 화진휴게소가 있고 휴게소에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영덕의 삼사해상공원은 동해안 일출의 명소로 떠오른 곳. 청정한 동해바다를 높은 언덕 위에서 조망할 수 있다. 왼쪽으로는 강구항이 보인다. 넓은 주차장과 식당, 숙소 등 각종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강구항으로 내려간다.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로 갑자기 인기 여행지로 부상한 항구이다. 특히 아침에 가면 어촌 포구의 정취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강구항에 들렀다면 강구항과 대진항을 잇는 해안도로(20번 지방도로) 드라이브를 '반드시'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해안도로이다. 동해안의 평화로운 어촌 마을, 바닷가에 널어놓은 피데기(덜 말린 오징어), 영덕 대게 원조마을, 해맞이 공원의 등대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내연산 남쪽으로는 장기곶이 있다. 호랑이 모습을 한 한반도의 꼬리에 해당되는 곳이다. 그래서 호미곶이라고도 불린다.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매년 1월 1일이면 인근 도로가 마비될 정도로 인파가 몰린다. 해를 볼 수 있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길에서 띄우는 편지

내연산의 관음폭포 사진은 사실 불완전한 사진입니다. 폭포수 위로 커다란 철다리가 이어져 있습니다. ‘내연산의 명물’로 꼽힙니다. 모든 내연산 사진에는 관음폭포와 철다리가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을 때 일부러 그 다리를 앵글에 집어넣지 않았습니다. 약 10m 길이의 철다리는 지난 물난리에 휩쓸려 크게 우그러져 있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떠내려가지는 않았지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너무 처참해 차마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서진 다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우리나라의 거의 대부분의 산에는 사람들이 만든 구조물이 있습니다. 나무와 쇠로 만든 계단이나 난간이 있고 돌산에는 내연산처럼 철다리를 지어놓기도 합니다. 케이블카나 곤돌라가 설치된 곳도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편하게 산을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문적인 산꾼들은 이런 구조물을 몹시 싫어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산을 파괴하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 힘으로 산에 오르려 하지 않고 스스로 편하기 위해 자연을 괴롭힌다고 비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산은 산꾼 만의 것이 아니라는 논리죠. 나이 들고 허약한 사람들도 산을 볼 권리가 있고 그럼으로써 자연에 대한 사랑도 함께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직까지는 후자 쪽의 의견이 강한 듯합니다. 그러니까 각 산마다 빠짐없이 인공구조물이 세워졌겠죠. 그리고 앞으로도 인공구조물은 더욱 많아질 전망입니다. 주 5일 근무제와 맞물려 각 지방자치단체가 자기 지방을 관광지화 하는데 애를 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내는 산에 쇠기둥을 박고 계단을 놓아 더욱 많은 사람을 불러들일 것입니다. 산을 다치게 해서라도 많은 사람이 즐기는 것이 옳은가, 조금 참더라도 강산을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 옳은가. 직업과 맞물린 일이어서 제법 긴 고민을 했습니다.

포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충청도 단양 지역을 지났습니다. 단양은 시멘트를 많이 생산하는 곳입니다. 시멘트 원료로 아예 통째로 까뭉개진 산이 여럿 있습니다. 몇 번 봤지만 볼 때마다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지난 번보다 더 뭉개진 모습이었습니다. 산에 쇠말뚝 몇 개 박는 것을 한참 고민한 자신이 바보스럽게 여겨졌습니다.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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