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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91>아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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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91>아옌데

입력
2002.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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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9월11일 오전 9시, 무장을 한 채 자신의 관저인 모네다궁에 남아있던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그 때까지 군사반란군이 유일하게 접수하지 못한 국영방송 마야가네스 라디오와 전화를 연결해 마지막 대국민 메시지를 남겼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 될 것입니다. 마야가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조국의 운명에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사람들이 싸워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우리의 아름다운 거리들이 다시 개방돼 시민들이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이고, 그리하여 더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저의 마지막 말입니다."그 직후 아옌데는 모네다궁으로 밀고 들어온 반란군과 맞서 싸우다 살해됐다. 65세였다. 의과 대학 출신의 아옌데는 25세에 칠레 사회당에 참여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1942년 34세의 나이로 사회당 서기장이 된 그는 1970년 대통령 선거에 좌파 정당들의 연합체인 인민연합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인민연합은 집권 뒤 대기업과 천연 자원을 국유화하고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는 한편 쿠바와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강화했다. 미국과 국내 우익 세력은 아옌데를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마침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육군참모총장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육해공 삼군과 경찰의 연합 쿠데타를 조직해 아옌데를 제거했다. 아옌데가 몸을 피했다면 목숨을 보전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피신을 권했다. 그러나 이 '노동자들의 대통령'은조국의 민주주의와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정했다.

고 종 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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