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紫雨林)이란 보라색 비가 내리는 숲이라고 이제 굳이 설명할 필요는 별로 없어 보인다. 자우림은 그냥 자우림일 뿐이다. 가요계에서 오히려 자우림은 다른 의미로 통한다. 음악성과 상업성의 미묘한 경계를 아주 잘 조절하는, 그래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음악을 그저 즐기려는 사람을 대부분 만족시킬 수 있는 '밴드'의 상징이다.
1997년 홍대 앞에서 김윤아(보컬) 이선규(기타) 김진만(베이스) 구태훈(드럼) 네 사람이 처음 모였을 때 가요계의 주류는 댄스였고 5년이 지난 지금은 R& B가 대세다. 하지만 자우림은 지난 5년 동안 줄곧 록을 고집해왔고 그 사이에 흩어지고 사라진 수많은 그룹들 속에서도 넷이 함께 해왔다.
■'4'
같은 멤버, 같은 음악으로도 자우림은 늘 조금씩 새로운 것, 전보다 나은 음악을 보여주었다. 마치 해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키가 자라는 어린 아이처럼. 그리고 네 번째 음반인 '4'에서 자우림은 마치 고등학교를 들어가는 겨울방학에 갑자기 십 몇㎝가 쑥 자라버린 사춘기 아이를 볼 때처럼 놀라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안긴다.
음악 스타일, 노랫말의 소재, 김윤아의 보컬 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느낌은 낯설다. 듣는 사람의 주위를 꽉 채운 듯한 소리다. 언제나 전면에 돌출해 있다고 여겨졌던 김윤아의 목소리도 한발 뒤로 물러서 악기들과 같은 줄에 서있는 것 같다. "그렇게 느껴진다면, 그건 우리가 이번 음반에서 사운드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일 거예요." 김윤아가 답을 한다. 2년 만에 새 음반을 만들면서 기계적인 컴퓨터와 부담스러운 오케스트라를 배제하고 되도록 단순한 사운드를 만들려 했다. 스튜디오를 여러 곳으로 하고 일본의 일급 믹싱 엔지니어인 요시무라 겐이치(吉村健一)와 작업했다. 일본에 두 달반 가량 머물면서 엔지니어링 '특별 과외'를 받았던 것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뮤지션이 연륜이 쌓이면 사운드에 집중하는 것은 자우림도 예외는 아니다.
■'팬이야'
'나의 팬은 나여야 한다'는 다소 비장하기도 하고 등을 두드려 주는 것 같기도 하는 타이틀 곡 '팬이야'도 '헤이 헤이 헤이' '매직 카펫 라이드' 등 예전의 머릿곡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발랄함이 옅어지고 우울함이 진해졌지만 채도보다는 곡 구성, 연주에서 완숙미가 두드러진다. 전작까지도 남아있던 아마추어 밴드의 느낌이 말끔히 가신 듯하다. 투표를 좋아하는 멤버들이 예전 자우림의 이미지에 더 가까운 '헤이 가이즈'를 제치고 새 음반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다는 이유에서 만장일치로 타이틀 곡으로 정했다. "까끌까끌한 질감의 벽면"(구태훈) "붉은 기운이 섞인 회색"(김진만) "안약을 넣고 바라보는 희뿌연 세상"(이선규) 등 알 듯 모를듯한 설명이 쏟아진다.
■밴드다움
소속사에서 만든 홍보 자료에는 새 음반의 화두를 '밴드다움'이라고 했지만 정작 자우림 네 사람은 밴드다움을 쉽게 정의하지 못했다. 한참의 난상토론이 이어진 후 또 김윤아가 정리를 해낸다. "각자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함께 하는 일"이라고 했다. 세 남자가 "와, 역시"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땅한 경쟁자 없이 내내 혼자 달린 경주가 힘에 부친 듯, 더 많은 밴드가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낸다면 자우림도 더 빛이 날 거라고 입을 모은다. 밴드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첫번째 일로는 공연을 꼽는다. 28,29일 올림픽공원 테니스 경기장에서 야외 공연을 갖는다. "음악으로 관객을 쥐었다 놓았다 할 수 있다"며 자신만만해 한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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