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해제했다는 데 왜 약을 안팝니까." "시에서 아무런 통보도 없었는 데 어떻게 해요."수해지역에 대한 의약분업 한시 해제 첫날인 9일 강원 강릉시, 동해시, 경북 김천시 등 대다수 수해지역 약국 등에는 '약을 달라'는 환자와 '줄 수 없다'는 약사간의 지루한 승강이가 하루종일 이어졌다.
보건복지부가 수해지역에 대해 9∼16일 의사 처방전 없이도 피부병 등 수해 후유증을 앓는 환자들은 병원을 거치지 않고도 약국에서 약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한시적 의약분업 해제' 지침을 내렸지만, 결정권자인 해당지역 보건소와 자치단체장이 이러 저런 이유로 의약분업 해제 결정을 미뤘기 때문이다.
▶"약달라" "기다려라" 승강이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 박상은(59)씨는 이날 오후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 갈 수 없는 마을 노인들을 위해 약을 사러 강릉시내 약국을 찾았다. 일시적으로 의약분업이 해제된다는 정부 발표만 믿고 피부병, 설사약을 사두려고 동네에서 돈을 추렴해 나온 길 이었다. 하지만 박씨는 "아직 시로부터 아무런 지침을 전달 받지 못했으니 약을 사려면 처방전을 가져오라"는 약사의 말에 허탈하게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박씨는 "수해지역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이런 조치 하나 빨리 처리 못하는 당국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냐"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같은 상황은 김천시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이날 김천시내 40여개 약국에서도 주민과 약사들간 승강이가 되풀이됐다.
강릉시 교동 T약국 약사 최모씨는 "왜 약을 안 파느냐고 항의하는 손님들에게 하루 종일 시달려야 했다"며 "공무원들이 이와 같이 시급한 일에 왜 시간을 끄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천시 H약국 약사 김모씨는 "주민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전했다.
▶'공무원들 또 늑장대응' 분통
의약분업 해제가 정작 각종 의약품이 시급한 수해지역에서 '감감 무소식'인 것은 해당지역 보건·행정당국의 안일한 굼뱅이 대응 때문.
특히 강릉시의 경우 의약분업 해제 승인 결재를 내줘야 하는 강릉시 보건소장이 이날 이 지역을 방문한 보건복지부 장관 영접을 위해 오전내내 자리를 비워 수재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김천시에서도 실무책임자인 보건소 의약계장이 의사회 무료진료를 안내하느라 자리를 비워 저녁 늦게까지 결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대부분 수해지역에서의 의약분업 해제 시행은 10일 이후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강릉시의 한 이재민은 "전시행정만 남발하는 당국과 수재민들의 고통이 뭔지 헤아리지 않는 현장 공무원들의 합작품"이라고 분노했다.
/김천=전준호기자 jhjun@hk.co.kr
강릉=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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