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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아웃 오브 아프리카

입력
2002.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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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는 소나무와 유칼립스 나무숲이 많다. 지금 남아공 정부는 이 두 종류의 나무를 베어내는 일을 마치 우리나라 새마을운동같이 추진하고 있다. 이 나무는 골드러시 때 식민지 정부가 광산버팀목으로 쓰기 위해 호주와 미국에서 도입하여 심은 외래종인데, 생태적 재난의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소나무는 산불을 확산시키고, 유칼립스는 물을 너무 많이 빨아먹어 지하수 보전에 큰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물도 보전하고 늘어나는 빈민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사업이다.남아공을 여행하면 엄청난 혼란에 빠진다. 그곳은 서유럽의 풍요로움과 아프리카의 비극이 동시에 존재하는 충격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케이프타운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제일 아름다운 도시다. 온화한 기후, 아름다운 산과 해변, 정돈된 도시 인프라와 쾌적한 주택가, 화려한 쇼핑몰, 거리를 달려가는 유럽의 고급브랜드 자동차 행렬이 그대로 서구 선진산업사회의 모습이다. 이 도시의 외곽은 아프리카 제일의 곡창지대다. 겹겹이 포개진 구릉을 타고 밀밭과 포도원의 전원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도시는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공항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거대한 빈민촌이 들어서 있다. 양철판 하나로 지붕을 덮고 쓰레기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포장마차 크기의 집이 끝없이 널려있다. 도시 곳곳에 이런 빈민촌이 우후죽순처럼 생긴다. 하수처리를 비롯한 위생시설이 없으니 동네를 흐르는 개천은 뿌옇게 오염되어 있다. 번화가에는 거지 떼가 수십명씩 몰려다니다 행인을 보면 동전 한닢 달라며 달려든다.

케이프타운 인구 350만명 중 100만명이 생계수단이 없는 빈민이다. 판자집마저도 없어 그냥 거리에서 잠자는 노숙자도 5만명이다. 케이프타운의 경제의 기둥은 제조업이 아니라 관광 해운 및 농업이다. 도시빈민에게 일자리를 전혀 줄 수 없는 구조다. 요하네스버그 등 다른 대도시도 무작정 몰려드는 빈민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1994년 만델라 혁명으로 남아공의 악명 높은 흑백분리정책(apartheid)이 철폐된 후 생기는 후유증이다. 흑인의 자유로운 거주이전을 막았던 족쇄가 풀리자, 도시빈민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농촌에서 몰려오고, 인근 국가에서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그러나 흑인정권 출현 후 투자는 줄어들었다.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도시빈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실업과 빈곤의 악순환을 의미한다.

하나의 국가단위로 볼 때 남아공의 신상명세는 대단하다. 남한의 12배나 되는 국토는 사막도 있지만, 4,500만이 먹고 살기에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어보인다. 석유를 뺀 모든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의료 원자력 석탄화학기술은 세계 첨단을 달린다. 그런데 남아공 인구 1,500만명이 빈곤 속에 허덕이고 있는 것은 아직도 경제적으로 흑백분리구조가 청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남아공사회가 외래종 나무를 솎아내듯이 유럽계를 내쫓을 수도 없다. 누대에 걸쳐 그들은 남아공 원주민이 됐고, 남아공 경제가 500만 유럽계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지난 4일 끝난 요하네스버그 세계정상회의에서는 개최대륙을 겨냥한 듯 이 빈곤이슈가 크게 부각됐다. 아프리카에서 빈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없다. 곳곳의 상황이 절망적이다. 남아공은 남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하고,선진화된 시스템과 인적자원이 구비된 유일한 국가다. 아프리카 대륙이 빈곤에서 탈출하는 데 그 선도자가 있다면, 그것은 남아공일 것이다.

아프리카는 인류가 태어난 곳이고, 육지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 대륙 7억 인구의 빈곤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세계가 안정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중동에 쏟는 관심의 절반도 못 받는 것은 아프리카의 비극이다.

김수종 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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