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은 적십자 인도주의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전쟁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자들에 대한 생사, 주소확인 문제를 협의·해결한다> 8일 금강산에서 발표된 남북 적십자회담 합의문 6개 조항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이 문장이다. 전쟁시기 행방불명자란 우리 측으로서는 국군 포로, 월북자, 또는 납북자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공화국에는 납북자나 국군 포로는 없다"던 종전 태도로 볼 때 어안이 벙벙할 정도의 변화라 하겠다.■ 2000년 12월 서울의 제2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때 국군포로 출신과 납북어부 출신 북한 주민이 각각 동생과 아들을 만났다. 이산 동기를 따지지 말자는 우리 측 주장을 북한이 받아들인 형식이었는데, 조건은 신원을 미리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3차 행사 때도 북측은 포로출신 2명과 피랍 KAL기 스튜어디스 출신의 가족상봉을 허용했다. 그러면서도 북측은 이들을 의거 입북자들이라고 주장했다. 1차 적십자 회담 때 이 문제가 제기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간 전례도 있다. 쌍방은>
■ 국군포로 조창호 소위가 70객이 되어 돌아온 사건 이전까지 우리 정부는 이 문제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포로와 납북자 가족들이 실종사실 확인을 요청해도 증빙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탈북자 대열에 포로출신이 끼어들어 일부 포로들의 안부가 확인된 뒤에야 비로소 관심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 사이 민간에서는 1956년 적십자사가 실종자 가족들의 신고를 근거로 실향사민(失鄕私民) 등록자 7,034명의 명단과, 1953년 공보처가 작성한 납북자 8만2,959명 명단이 공개되었다.
■ 이 속에는 정인보(학자) 이광수(작가) 현상윤(교육자) 안재홍(정치인) 백관수(정치인) 조소앙(정치인) 손진태(학자) 김기림(작가) 등 유명인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앞의 다섯 사람은 평양 근교에 있는 특설묘지에 묻혀있다는 소식이 최근 평양방송 보도로 전해졌을 뿐, 대다수 납북자와 포로의 안부는 깜깜하다. 정부는 아직 납북자와 포로 문제에 관해 제도적인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안부 확인을 교환하자는 북한의 '선물'을 받아 들고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너무 무책임해 보인다.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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